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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란듀란·아하 노래로 만나는 아일랜드판 ‘응답하라 80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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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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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2006)와 ‘비긴 어게인’(2013)으로 음악영화의 새 지평을 연 존 카니(44·사진) 감독. 그가 신작 ‘싱 스트리트’(19일 개봉)를 내놓았다. 전작들이 치유와 소통을 다뤘다면, 이번 영화는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존 카니 감독 ‘싱 스트리트’ 내일 개봉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불경기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더블린.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빈민가 학교로 전학을 간 코너(페리다 월시 필로)는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인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안한다. 그리고 교내에서 어설픈 멤버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급조한 뒤, 노래를 만든다. 음악을 향한 열정을 풋풋한 첫사랑 속에 녹여낸 이 영화는 카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e-메일로 만난 카니 감독은 “내 인생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학창 시절의 솔직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며 “이 영화가 음악영화 시리즈의 완결판”이라고 말했다.

상류층 사립학교를 다니던 코너가 빈민가 학교로 전학가고,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밴드 활동을 하는 설정은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니 감독은 다만 “나의 밴드 경험은 영화 속 밴드처럼 쿨하고 유쾌하진 않았다”며 “밴드를 시작한 계기가 됐던 여자와의 관계도 영화와 달리 가슴 아프게 마무리됐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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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스트리트’의 코너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밴드를 만들지만, 음악을 통해 성장해간다. [이수 C&E]

영화에서 가족 붕괴의 위기에 처한 코너의 집은 더블린의 빈민가 만큼이나 우울한 톤으로 그려진다. 이는 코너의 밴드가 찍는 뮤직 비디오의 화려한 색감과 대비를 이룬다. 카니 감독은 “그런 대비를 통해, 이 영화가 3분 짜리 뮤직비디오와 같은 현실 도피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나 또한 당시 인기 그룹 듀란듀란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멋진 세상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고 했다.

코너는 지적이며 독립적인 연상의 여인 라피나와의 만남을 통해, 적극적이고 당당한 소년으로 변해간다. 불행한 가족사와 폭압적인 학교 분위기, 가슴 아픈 짝사랑의 슬픔까지도 음악의 에너지로 승화해낸다. 카니 감독은 “스스로 배우며 성장해가는 코너가 더 큰 세상에서 경험을 쌓기로 결심하는데, 이는 무척 의미있는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듀란듀란·아하·홀 앤 오츠 등 당대 유명 뮤지션의 명곡들과 함께, 80년대 스타일이 물씬 묻어나는 OST를 잔잔한 드라마 속에 녹여넣었다는 점이다. 카니 감독은 함께 음악작업을 한 80년대 뮤지션 게리 클라크에 대해 “학창 시절 내 삶의 행로를 바꿔놓은 뮤지션”이라고 말했다. 극 중 코너에게 대중문화의 자양분을 심어주고,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응원하는 형 브랜든(잭 레이너)은 감독이 “3년 전 사망한 형 짐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다.

삶의 바닥을 친 주인공이 음악을 통해 위안받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어온 카니 감독은 “음악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절망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며 “당분간 시나리오 작업을 쉬면서, 곧 태어날 아이의 아빠로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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