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5)-제85화 출판의 길 40년(58)-정진숙|「아동문화협회」의 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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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성인들에게는 국학을, 아동들에게는 국어를 보급하여 해방된 국민을 교화한다는 것이 을유의 지향이었다.
을유문화사에 병설된 아협의 문화운동은 윤석중동인의 주도 아래 전개되었다. 어린이에게 우리글을 깨우치는 작업은 가장 빠르게 익히도록 책을 펴내는 출판사업을 비롯하여 노래 보급과 글깃기, 그리고 웅변대회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쓰게하려는 운동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아동도서와 잡지 간행에 주력을 기울였다.
당시 상황으로는 참으로 대담한 기획이 착수됐다. 『주간 소학생』을 윤석중 주간, 조풍연편집국장으로 46년 2윌11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주간 잡지는 창간 이듬해 45호까지 1년2개월간 속간하고, 그해 5월1일자로 『월간 소학생』 첫호(제46호)로 바꾸어 6·25직전 제79호까지 나오고 사변으로 종간되었다.
『주간 소학생』 창간호는 타블로이드판 크기 12면으로 임시정가 20전에 보급되었다. 어린이 주간지로는 해방후 최초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격문·규탄서·성명서 따위가 어지럽게 쏟아져 나올 그 당시 흙탕물에서 연꽃을 피우듯 해방의 기쁨을 어린이에게로 돌리자고 조용하게 을유가 나선 것이다.
생각하면 이런 기획을 과감히 세웠던 것은 오로지 일찌기 1925년에 『어린이』지의 부록 『어린이 세상』 편집, 1933년에 『어린이』주간, 1936년에 『소년 조선일보』 편집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은 윤석중형의 공로인 것이다.
또 『주간 소학생』을 내면서 처음으로 개척한 것은 코주부 김용환·김의환형제의 발굴이었다.「어린이 만화」와「이야기 그림」으로 연재되어 당시 소학생들 사이에 애독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상황으로 주간물이 어려웠다. 전국에 지사 모집을 했는데 이 지사가 응모되지 않았고, 지방지사가 개설되었다 하더라도 학교가 방학이 되면 방학동안에는 소학생에게 나눠줄 길이 없다고 예약 부수 전량을 고스란히 반품하는 에기치않은 사태가 발생하여 지사와 출판사간의 계약이 전혀 이행되지 않는 일도 당했다. 그런데 오직 부산지사를 맡은 신생사서점만은 방학을 이유로 반품하는 일이 없었다.
『출판사와 약속한 것을 이행안하고 잡지대를 안보내면 잡지사는 어떻게 유지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말한 것은 신생사의 정재균사장이었다.
이런 갸륵한 생각을 하는 서점경영인은 이제나 저제나 참으로 귀한 존재이므로 적어두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서점들이 위탁상 거래를 기화로 책값의 결제를 늦추는 것은 출판 위축의 큰 요인인 것이다.
47호로 속간된 월간 『소학생』은 32면이었다. 이 잡지 편집은 때로는 조풍연형이 맡았다.
우리는 이상의 아동잡지 발행과 함께 『소파동화독본』 전5권을 46년11월에 발간하였다. 이 독본엔 김의환 정현웅·윤희순·김규택·한홍택의 그림을 곁들인 이 역시 해방후 개인의 아동물로서는 첫전집 형태가 아니었나 본다.
6·25전까지 계속된 아협 기획물로는 『아협 그림 얘기책』이 10집에 이르렀고, 『그림동산』 4집, 『아협 어린이 벽도』 3집과 그외에 아협판 단행본이 여러권 있었다.
한편『아협 그림 얘기책』은 46년9월 김용환그림 『흥부와 놀부』를 필두로, 『손오공』 『피터 팬』『보물섬』 『어린이 예술가』가 김용환· 김의환 형제의 책으로 나왔고, 49년3욀 아협 꾸밈 『링컨』으로 마지막 열권을 채웠다. 그런데 이『그림 얘기책』의 김용환·김의환의 만학적이고 해학적인 그림의 기법으로 어린이 책을 제작했다는데 대하여 독특한 기획이란 평을 받았고 따라서 한동안 잘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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