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이 대주주 된 기업 9곳, 산은 퇴직 낙하산 임원 19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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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퇴직자를 내려보내는 관행은 국책은행 모럴해저드의 전형이다. 중앙일보가 최근 5년간 산업은행이 지분을 보유한 코스피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9개 기업에서 구조조정 작업 이후 산업은행 출신 인사 19명이 상근감사, 재무담당 부사장 등 사내이사로 등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대상 가운데 빚을 갚지 못해 산업은행이 채권을 지분으로 전환한 회사는 20 곳이다. 실제 구조조정 대상 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에 산업은행 출신 사내임원이 거쳐간 셈이다. 구조조정 기업당 한 명꼴로 있는 산업은행 출신 사외이사까지 더하면 전체 등기임원은 50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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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관리 기간이 긴 기업일수록 산은 출신 임원이 많았다. 산은 출신 사내이사가 가장 많은 기업은 대우증권(6명)이다. 현직에 있는 이삼규 수석부사장과 전응철 상무 역시 산은 출신이다. 쌍용양회공업(4명)과 현재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3명)에도 전·현직 임원 자리에 여러 명의 산은 출신 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사외이사까지 포함하면 50여 명
대우증권에만 수석부사장 등 6명
산은 “기업 정상화 위한 파견일 뿐”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국책은행 퇴직자 낙하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구조조정 기업 관리의 전문성이다. 해당 임원이 부실기업 내부에서 구조조정에 힘을 싣기보다는 넘쳐나는 퇴직자를 처리하기 위해 배치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워크아웃을 경험한 기업의 한 전직 임원은 “국책은행 출신 임원은 전문성을 갖춰 들어온 경우보다는 ‘생명 연장의 꿈’을 안고 온 퇴직자가 대부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일부 구조조정 기업에서는 한 임원이 2~3년 머물다 다른 산업은행 퇴직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사실상 ‘산은 지정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낙하산 인사 유혹은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에 소극적으로 만드는 ‘마약’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책은행 입장에선 관리 기업이 많을수록 퇴직자 처리가 쉽기 때문에 빠른 구조조정보다는 현상유지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며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기업 낙하산 인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기업의 임원 선임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는 반응이다. 산은 관계자는 “사외이사 등 임원 선임이 의무규정은 아니지만 외환위기 이후 채권단이 관리를 위해 직원을 파견하고 필요에 따라 여러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는 게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으로 돼 있다”며 “내부의 400여 명 인력 가운데 관련 업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선발해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출신 전문가로도 구조조정 작업이 가능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행의 재정관리 측면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산업은행 출신이 선호된다”고 답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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