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운정선생님. 오늘은 하늘도 땅도 잠깐 빛을 잃은듯 추연한 기상입니다. 6월의 푸르름은 저토록 싱싱하고 찬란하오나 선생님은 이제 다시 못을 먼길을 떠나셨습니다.
금방이라도 자애로우셨던 미소와 낭랑하시던 음성, 형형한 눈빛 되살아 우리 곁에 다가오실 듯 생생 하온데 선생님께서 세상을 뜨셨다니 꿈결만 같고 믿을수 없습니다.
선생님, 되돌아 보면 선생님의 일생은 그대로 험난한 가시밭길, 이 나라 역사의 길이었으며, 그 형극의 길을 굳은 신념과 의지와 슬기로 헤쳐 오신 선구자의 길이었습니다.
역사의 영욕이 겹칠 때마다 선생님의 고통은 그만큼 크셨지만, 그때마다 칠전팔기의 굽힘 없는 뜻으로 이 나라 여성교육에 전념해 오셨습니다.
항상 성실하고 믿음직 하라고 가르치시던 선생님, 대아를 위해 소아를 주저없이 버리시던 선생님, 자신의 몸보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시던 선생님….
오늘 저희는 가까운 벗으로의 선생님 한 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큰 별, 여성계의 영명한 지도자 한 분을 잃었습니다. 정말 애통하고 애통하옵니다
이제 다시는 그처럼 큰 도량과 사랑과 가르침을 내리실 어른이 안 계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새삼 슬픈 마음을 누를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가시지만 이제 수많은 당신의 후배, 제자들이 선생님의 고결하신 인품과 거룩한 뜻을 그대로 받들고 마음에 새겨 계승할 것입니다.
더욱이 선생님께서 36년부터 50년 가까이 심혈로 가꾸어 오신 지난의 뜰 성신의 난초 향기는 영원히 선생님의 훈향을 머금어 드높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애중히 여기시던 우리의 산과 바다, 강과 들, 선생님을 존경해 온 그 많은 친지와 동료, 제자들은 이제 모두 당신의 역전에 엎드려 가슴 메는 오열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 당신의 가시는 길을 지키오니 부디 안식 속에 영면하시옵소서
1985년 6월18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