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재 기른 "자애" 길이 빛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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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생님, 운정선생님. 오늘은 하늘도 땅도 잠깐 빛을 잃은듯 추연한 기상입니다. 6월의 푸르름은 저토록 싱싱하고 찬란하오나 선생님은 이제 다시 못을 먼길을 떠나셨습니다.
금방이라도 자애로우셨던 미소와 낭랑하시던 음성, 형형한 눈빛 되살아 우리 곁에 다가오실 듯 생생 하온데 선생님께서 세상을 뜨셨다니 꿈결만 같고 믿을수 없습니다.
선생님, 되돌아 보면 선생님의 일생은 그대로 험난한 가시밭길, 이 나라 역사의 길이었으며, 그 형극의 길을 굳은 신념과 의지와 슬기로 헤쳐 오신 선구자의 길이었습니다.
역사의 영욕이 겹칠 때마다 선생님의 고통은 그만큼 크셨지만, 그때마다 칠전팔기의 굽힘 없는 뜻으로 이 나라 여성교육에 전념해 오셨습니다.
항상 성실하고 믿음직 하라고 가르치시던 선생님, 대아를 위해 소아를 주저없이 버리시던 선생님, 자신의 몸보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시던 선생님….
오늘 저희는 가까운 벗으로의 선생님 한 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큰 별, 여성계의 영명한 지도자 한 분을 잃었습니다. 정말 애통하고 애통하옵니다
이제 다시는 그처럼 큰 도량과 사랑과 가르침을 내리실 어른이 안 계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새삼 슬픈 마음을 누를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가시지만 이제 수많은 당신의 후배, 제자들이 선생님의 고결하신 인품과 거룩한 뜻을 그대로 받들고 마음에 새겨 계승할 것입니다.
더욱이 선생님께서 36년부터 50년 가까이 심혈로 가꾸어 오신 지난의 뜰 성신의 난초 향기는 영원히 선생님의 훈향을 머금어 드높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애중히 여기시던 우리의 산과 바다, 강과 들, 선생님을 존경해 온 그 많은 친지와 동료, 제자들은 이제 모두 당신의 역전에 엎드려 가슴 메는 오열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 당신의 가시는 길을 지키오니 부디 안식 속에 영면하시옵소서
1985년 6월18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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