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의 『두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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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는 계절을 맞아 이의 문학적 인식과 형상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어면 쟁점이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분단문제 역시 논리적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작품이 드물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침체를 말하는 80년대에 들어와서 분단문제에 관한 한에서는 시의 엄격을 앞질러 새로운 역사적 인식과 형상화 작업이 시도되고 있음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80년대의 분단소설이 이룩한 가장 큰성과의 하나는 대립과 상잔에서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는 자세라고 할수 있다. 죽느냐 죽이느냐, 선이냐 악이냐하는 양극화의 가치개념에서 해방되어 화해를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은 특히 새 세대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어 더욱 흥미있다.
김용성씨의 『두 아들』(한국문학 6월)은 해방 직후 좌우익의 대립을 자기권력 확장수단으로 이용한 고무신 장수가 6·25때 보복 살해당한 뒷이야기다. 두 아들들은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적대감으로 팽팽히 맞서왔으나 어느새 화해를 모색, 서로의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뜻밖의 숨겨진 새사실의 탄로로 다시 그 화해의 의지가 벽에 부닥치게됨을 이 작품은 암시한다. 『용서하려면 좀더 시간이 흘러야 될것 같은느낌』을 가지면서도 빗길속에서 상대가 사준 비닐우산을 버리려다 다시 펼치는 상징으로 이 작품은 끝맺는다. 심정적 적대감이 현실적 삶속에서 보복이 아닌 화해를 용납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분단소설들이 지닌 이런 원한의 화해에로의 승화는 6·25의 체험으로부터 시간적 간격이 먼 세대의 작가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것 같다. 직접 체험세대에 의한 피해의식으로서의 분단문학은 그 희귀성과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인식의 편견을 뛰어넘을수 없다는 점에서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것이다. 더욱이 그 당시의 민족사적 상황을 도외시한 채 표면적으로 나타난 비참상만을 확대시켜 부각시키는 수법으로서의 분단문학은 역사적 사실의 재현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래 지향적 민족 문학적 시각에서 궤도 수정이 절실한 단계에 이른것 같다.
금년 상반기의 작품중에서만 보더라도 6·25의 직접체험 세대가 지닌 적대감의 해소를 다룬 것으로 김상열씨의 『객사』(현대문학1월), 조갑상씨의 『사라진 사흘』(현대문학1월),김청씨의 『그날의 깃발』(한국문학2월), 이건숙씨의 『엄마의 미움』(한국문학4월)등이 있다.
이 일련의 작품에 나타난 주제는 전쟁의 직접 피해자 세대가 지닌 원한을 그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줘 원수에게 보복하라는 식의 뜻을 전하나 그 2세들은 다 그런 부모의 의지를 거역하고 도리어 화해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방법으로 부모들끼리가 원수였으나 자식 세대에서는 결혼하기도 하고 (『그날의 깃발』), 원수였던 친척을 만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거역하고 찾아가기도 하며(『엄마의 미움』), 아버지의 위선과 죄악적 삶을 저주(『객사』)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화해의 추구형식으로서의 분단문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족사적 정통성에 대한 탐구를 포함시키지 않는 맹목적 화해는 자칫하면 분단 고착화나 현실 긍정이라는 일상적 안일주의에 빠질 우려가 없지않다. 즉 개인주의적 내지 가족주의, 혹은 친족 주의적 입장에서의 자기 고독과 소외 의식에서 연대감을 추구하는 자세로서의 화해는 다시 민족의식으로서의 화해추구로 승화되어야 할것이다.
말하자면 『두 아들』에서 보듯 아버지의 시체가 묻혀있다는 그 자리에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무수한 원한과 악을 청산하지 않은 맹목적 물질주의의 팽창과 현실 화해의 허구성은 분단문학의 또 하나의 넘어야 할 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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