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운동 너무 열심히 해도, 살 뺀다고 편식해도 염증 생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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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을 삐끗하면 붓거나 통증과 함께 급성염증이 생길 수 있다. 염증이 보내는 신호에 소홀하면 만성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편도선염·위염·구내염·관절염·질염…. 우리에게 흔한 염증성 질환이다. 염증이 질병을 유발하는 나쁜 물질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염증은 수많은 질병을 암시하는 지표다. 면역세포가 질병을 막기 위해 세균·바이러스 등과 싸우며 만들어낸 고마운 잔해물이 염증이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환자의 심혈관 질환, 암 같은 중대한 질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때 염증 수치를 주요 지표로 삼는다.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박민선(가정의학과) 교수는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만 잘 해줘도 많은 병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염증의 의미와 염증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염증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존재다. 세균·박테리아·미세먼지·황사 같은 이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면역 시스템이 이물질과 맞서 싸운다. 이 전투의 잔해가 염증이다. 박 교수는 “몸에 염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작은 균이 침입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염증은 급성염증과 만성염증으로 나뉜다. 빨리 만들어지는 급성염증은 주로 통증을 동반한다.

가령 손가락에 상처가 났을 때 열이 나고 빨갛게 붓거나 진물·고름이 만들어지면서 통증이 생긴다. 박 교수는 “급성염증은 전신으로 퍼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 회복한다”며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냉찜질·소독 같은 응급처치를 해주면 환부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다”고 전했다.

몸안의 염증 오래되면 만성질환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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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만성염증이다. 이 염증은 대부분 혈관에서 천천히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염증을 만드는 동안 통증이 없어 오랫동안 염증 생성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염증은 혈관, 호르몬, 신경계, 신진대사 기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심뇌혈관 질환 같은 대사증후군을 유발한다.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이기영 교수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콜레스테롤이 체내 혈관에서 만성염증을 만드는 주범”이라고 설명했다. LDL콜레스테롤은 혈관 내벽을 뚫고 들어가 차곡차곡 쌓인다. 이때 면역세포인 대식세포가 출동해 LDL콜레스테롤을 먹어치운다. 또 다른 면역세포인 림프구가 파견된다. LDL콜레스테롤과 면역세포가 뭉친 덩어리가 염증이다. 혈관 내벽에서 계속 쌓이면 염증은 터져 혈액으로 쏟아진다. 혈관을 좁게 하거나 막아 급성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뇌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만성염증을 줄이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핵심은 ‘적당한 수준’이다. 박 교수는 “적당한 수준의 운동은 염증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지만 지칠 때까지 운동하면 오히려 체내 염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육체노동이 심한 날 억지로 운동하는 것도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박 교수는 “몸이 무리할 때 염증이 만들어지고 쉴 때 염증이 가라앉는다”며 “예를 들어 농촌에서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고구마를 캤다면 운동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양소를 편식해도 염증이 생긴다. 박 교수는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적게 먹더라도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야 한다. 특히 탄수화물은 꼭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공급원인 탄수화물(밥)을 먹지 않은 채 과일로 끼니를 때우면 염증을 유발할 수 있어 다이어트해도 밥을 반 공기 정도 먹는 게 좋다는 것. 과식하거나 뚱뚱하면 혈액 속에 염증이 생긴다.

체내에서 이물질로 인식하는 미세먼지·황사는 가급적 피한다. 과음·흡연도 염증을 유발한다. 박 교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신경계 기능이 떨어져 염증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채혈로 염증 수치 간단히 알 수 있어

간단한 채혈로 염증 수치를 측정하는 검사도 있다. 이 교수는 “염증 수치만 잘 관리해도 평소 건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염증 수치 검사법으로 CRP(C-reactive protein)가 있다. CRP는 몸안에 염증이 생길 때 간에서 혈액으로 내보내는 단백질이다.

혈액 속 CRP 농도가 높다면 몸 어딘가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을 암시한다. 강동경희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강소영 교수는 “보통 CRP가 혈액 1L당 10㎎ 넘게 들어 있으면 심근경색·종양, 류머티스관절염·루프스 같은 자가면역질환, 크론병 같은 염증성 장질환 등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가 1995~2006년 건강검진을 받은 3만3567명을 분석한 결과 염증 수치가 높았던 그룹에서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질환이나 폐암으로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염증 수치 검사법으로 ‘적혈구 침강속도(ESR·erythrocyte sedimentation rate)’ 검사가 있다. 혈액 속 염증이 많아지면 적혈구를 빨리 가라앉게 만든다는 원리를 적용했다. 시간당 남자는 15㎜, 여자는 20㎜보다 적혈구가 더 빨리 가라앉으면 체내 염증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가까운 병·의원에서 간단한 채혈로 염증 수치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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