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40년…"인적교류"첫 이정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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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단 12년만에 재개된 제8차 적십자회담은 9차본회담의 개최일자와 예술공연단이 포함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의 교환방문을 추진한다는 두가지 사항에 합의를 보고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회담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곤 예축하기 어려웠던 우리측 제의인 고향방문단과 북측제의인 예술단 교환방문에 대해 양측이 일부 양보, 이를함께 추진키로 합의함으로써 분단40년사에 의의적인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이는 또 과거의 적십자회담이 의제토의방식이라는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에서부터 의견이 맞서 지지부진했던 면모를 일신하고 하나의 구체적인 「성과」를 기록함으로써 이 회담에 대한 전망성을 밝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8차화담은 2차회의가 끝날때까지만해도 9차본회담의 개최일자만 합의됐을뿐 이산가족재회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에는 어떠한 합의점도 찾지 못했었다.
다시말해 의제토의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1차회의에서의 양측제의를 종합, 우리측이 제기한 「예술단을 포함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방문」에 대해서도 의견이 맞서 있었다.
우리측은 방문전에 생사확인부터 먼저하고 예술단을 이산가족방문단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고, 북적은 생사확인은 불필요하며 예술단은 별도의 과제라고 맞섰던 것이다.
그러다가 회의 막바지에 우리측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의제토의방식은 그것대로 토의를 진행하고 8·15 전까지는 이산가족 교환방문문제를 해결짓자고 제의했다. 이에대해 북적측이 한술더떠『돌아가기 전에 해결하자』고 동의해옴으로써 전기가 마련했다.
이에따라 양측 실무자들이 절충을 벌인결과 우리측은 생사확인문제를, 북적즉은 예술단 분리를 각각 양보해 「생사확인없이 예술단이 낀 고향방문단」을 오는 8윌15일을 전후해 교환방문하도록 추진키로 합의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타결과정을 볼때 이번 합의는 우리측이 8차 회담에서는 이산가족 재회를 위해 무엇이든 한가지라도 사업을 전개해야겠다는 집념을 갖고 융통성있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측은 북적측의 의제 일괄토의주장에 대해 『순문성에 구애받지않고 모든 의제를 포괄적으로 토의할 수 있다』고 원칙적으로 수용태세를 나타냈다.
특히 그 의도가 분명한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제의에도 이를 이산가족방문단에 포함,절충안을 제시하는 기민성을 보이면서 북적의 제의를 수용해주었다..
「자유내왕」문제도 우리측은, 북적측이 과거처럼 조건·환경론같은 정치척 전제조건을 걸지 않으면 언제든지 합의할 수 있다고 하는 등 북적의도를 「기분나쁘지 않게」 봉쇄하면서도 북적제의에 동의해주는 신축성을 발휘한 것이 이같은 타결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북적측이 합의에 응해온 것은 우선 명분상으로 볼 때「자유내왕」의 실현을 주장한 입장에서 그 초보적 실천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고향방문단의 교환을 거절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분석된다.
또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교·경제등 갖가지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긴장완화의 제스처를 보일 필요성을 안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한은 현재로서는 남북대화에 대한 「원천적인 수요」를 갖고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확실성」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 회담에서도 북측은 『최고의 인도주의는 조국통일』이라는 주장을 필요이상으로 강조했고 「자유내왕」을 제의한 「속마음」도 읽어보면 1백% 낙관만은 할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게다가 예측못할 사건을 종종 일으키는데 수완이 있는 그들과의 협상에서 문서에 의한 합의서교환도 없었고 공동회견도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현단계로서는 이번추진합의가 그대로 실현되리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며 냉정한 눈으로 오는 7월l5일의 판문점실무접촉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 불확실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문단·예술단교판추진 합의는 지난 72년적십자회담이 시작된후 최대의 성과임에는 틀림없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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