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은 현실을 바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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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이 가장 인기있는 과목이 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외신보도에 의하면 70년대 초반에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수가 6위였으나 최근에는 단연 1위로 부상하였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경제이론과 경제학자의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때에 경제학이 인기과목이 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학이 「비관적인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불린지는 오래다. 그러나 무용론까지 나온 것은 70년대 초반이후 어려운 국제경제 상황에 대한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때문일 것이다. 30년대의 세계 대공황에 대한 처방을 내놓은 이후 경제학계를 휩쓸다시피한 케인즈학파는 특히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세계경제의 호황을 지속시킨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케인즈학파는 1차 석유파동 이후 선진국에 만연된 인플레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권위가 점차 떨어지고 대신 시카고대학을 중심으로한 통화론자들의 세력이 70년대말부터 경제학계에서 점차 커지게 되었다.
79년말 2차석유파동이 세계경제를 또 한차례의 어려움에 몰아 넣었을때 통화론자들은 경기회복 보다는 물가안정을 강조하였고 이로 인해 세계경제의 불황은 3년이상이나 지속되었다. 이와 같이 케인즈학파와 시카고학파 모두 실업과 인플레중 하나만을 해결하였지 이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함으로써 경제학의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으며 새로운 세계경제현실에 대처할수있는 새로운 경제이론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일게 되었다. 특히 지난 몇년간은 경기회복의 속도와 시기는 물론이고 주요환율의 변동에 대한 예측마저 번번이 빗나감으로써 경제학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큰 소리만 하는 사람」으로까지 혹평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학의 인기도가 최근 높아지고 있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선 경제여건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이는 건강할때보다는 몸이 아플 때 의학이나 의사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는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또 하나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있어서는 그래도 경제학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인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대 경제학이 비록 모든 경제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할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학은 아직도 유용하며 한번 공부해 볼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우리의 경제정책은 국적이 없다는 평을 듣게된다.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은 반드시 국적이 있을 필요는 없다. 세계각국이 각기 자기나름의 경제학을 개발한다면 경제학은 노벨상 수상대상에서 제외됨은 물론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정책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각국은 그 국가가 처해있는 시기나 과제에 알맞는 정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라마다 현실이 모두 다른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이 외국의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반드시 이상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선진제국은 물론 특히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일본·대만의 경험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여러 신흥개도국들은 한국의 경험을 자기들의 경제개발계획수립에 참고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수립에 있어서도 이른바 「국적」에 대한 지나친 집착보다는 필요하다면 외국의 겅험에서도 배우는 융통성이 더욱 요구된다 하겠다.
현실경제를 다룸에 있어서 경제이론을 너무 많이 적용하기 때문에 우리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경제이론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오해라고 생각된다. 경제이론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경제이론은 뚜렷한 철학과 역사관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갖가지 경제이론간의 차이는 따지고 보면 철학과 역사관이 다르다는 데에 기인한다. 그러나 모든 경제이론에 있어 공통적인 점은 합리적 논리전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의 뒷받침 없이는 경제이론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도 경제이론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 정책이 논리적인 일관성을 잃고 세류에 따라 방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제현안을 기존 경제이론으로 다 풀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제이론은 현실을 단순화하여 정립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당면한 정책과제에 대해서는 기존 경제이론에서 고려되지 않은 변수들도 모두 감안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의 해결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경제이론은 현안을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초적 틀을 제공할 수 있으며 기존이론으로 부족한 부분은「건전한 상식」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건전한 상식은 교과서적 이론을 현실적용이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실경제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이론경제의 뒷받침이 불가피하며 이론경제와 현실경제는 서로 대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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