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가족간의 말씨부터 다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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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얘 새 아기야, 검둥이가 왜 저리 짖는가 나가 보아라』
『쇠씨 (우씨) 가 덕석씨를 쓰옵시고 마당에 서 계옵시니 개씨가 짖으시옵니다』
필자가 어렸을때 할머님께 들은 이야기다. 그때 철부지 손녀는 까르르 옷어넘겼지만, 그 진위는 차치하고 왜 우리 전통사회에 이런 고담이 있어 왔을까 생각해 볼 시점에 온 것 같다.
『말이란 가장 삼가고 조심해야 되는 것, 공대해서 뺨 맞는 법 없다. 그래서 내훈에도 언행장 첫머리에 넣고있지 않는가』
늘, 듣던 말씀이다. 하물며 시집살이 못해내면 죽어야 했던 시절, 딸을 시집 내보는 어머니는 가마머리를 붙잡고 이 말만을 되풀이했었다. 그래서 어린 가슴에 오죽 용심했으면 소·개·덕석까지에도 존대를 받쳤을까.
요즈음 여인들은 어떤가.『맞다! 맞다!』베란다 위에서 호들갑 떠는가하면(한때 TV광고) 시집오자마자 남편 형제들에게 대뜸 삼촌! 고모! 라 대놓고 부르기 일쑤다. 아이도 생기기전에 이건 너무 성급하다.
『서방님』 『도련님』 『아기씨(아가씨)』 『작은아씨 (소고)』라는 호칭이 어색해서, 아니면 남존여비시절의 유습같아 『아더메치』 해서일까. 어색해서라면 생판 남에게 『어머님』 『아버님』 이라 부르는 것과 오십보백보가 아니겠는가.
도시 『삼촌』이니 『고모』니는 삼인칭으로는 쓰였어도 대놓고 부르는 풍습은 없었다.
만인지상의 왕도 고모님에게 『아주머님』이라 불렀음은 숙종의 친필편지가 증명한다(효종의 따님 숙휘공주에게) .
6·25이후갑자기 아주머니·아저씨가 범람해서 오늘날은 4천만이 다 숙질간이 되었으니 고모·이모·삼촌이란 한자호칭은 남과 내붙이를 구별하려는 데서 나온 것 갈다. 그렇다면 마땅히 『님』 자를 받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삼촌님은 우습다.
언어의 혼란은 어디 호칭뿐인가. 가족간의 말씨도 엉망인 집들이 많다. 말만한 자녀들이 제 부모들에게 숫제 반말지거리를 쓰는 집, 그런 가정들은 자녀들 보는데서 부부간의 말버릇이 상스러운 경우가 많다. 호화저택은 하루아침에도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다. 가족들의 말씨는 신분이 별안간 귀해졌다고 해서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예부터 여인의 외형적 이상형을 말할 때『서울말씨에, 평양 인물에, 강원도살결』 이라 했다.
수도란 어느 나라나 잡다한 인종이 모여드는 곳, 내가 사랑하는 고향이지만 오늘날 인구 1천만 명이 우글거리는 서울에서 『우아한 말씨』 를 빼놓으면 무엇이 자랑일까.
『제가…』 『선생님께서』 『잡수세요』 『그랬읍니다』경어란 상대방을 높이는 말도 있고 나를 낮추는 말도 포함된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되지도 딱딱하지도 않는 품위 있는 말씨』 는 우선 가정에서, 가족사이에서 익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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