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도구역」꼭 줄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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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정책 중에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다. 국도 지방도로의 접도구역을 5∼15m에서 5m로 대폭 축소하고 금지되어 왔던 건물의 신·증축과 각종 건축제한 행위도 완화해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그같은 정책 중의 하나다.
정책이란 물론 상황과 여건에 따라 융통성있게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 것이다. 문제를 알면서 바로 잡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못이다. 접도구역에 관한 것은 이런 차원에서 볼때 잘한것일까?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었고 선거철에 이슈가 되어 민원을 줄이자는 계산에서 접도구역에 관한 정책이 선회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20여년간 손대지않던 접도구역을 왜 손대기로 했는지 상황은 짐작이 가지만 문제가 있다.
오랫동안 다소 불편이 있어도 참아왔는데, 그리고 앞으로 도로가 넓어져야지 좁아질리 없을텐데, 너무 목전의 계산에 끌리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다.
접도구역 완화는 민정당이 지난 선거에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검토 단계부터 논란이 크게 일었던 문제였다. 찬·반이 무성했고, 당정협의 과정에서 집권당의 선심 공세에 행정부가 들러리(?)를 서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와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었다.
건설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접도구역이 지정된 후 20년이 지난 현재는 도로 포장률이 16%에서 70%로 높아지는 등 도로 개선이 그만큼 이뤄져 이제는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광범한 규제를 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접도 구역은 80년에 들어 정부 당국이 이미 두차례나 완화 조처를 취했고 가장 최근에는 82년1월 현재의 폭으로 접도구역 폭을축소했었다. 그후 엄청난 여건 변화가 있을리 없는데 건설부는 이렇게 구차한 변명같은 이야기를 하고있다.
정부는 70년대 중반 수차례에 걸쳐 접도구역을 일제조사, 불법건물을 철거하고 관계 공무원을 징계하는등 보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었었다. 그러던 것이 이상스럽게도 80년대 들어와서는 정책이 급선회, 완화 일변도다.
정부가 도로법을 개정, 접도구역을 법제체화 한 것은 지난 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순시를 하는 가운데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길옆의 집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보고 예산 낭비를 막기위해 접도구역을 지정, 건축행위를 규제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접도구역을 해제해 한번 건축물이 들어서고 도로를 다시 확장해야되는 때라도 오면 그만큼 일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문에 우리보다 여건이 훨씬 나은 일본이 최근 접도지역을 확대하고, 구미 각국에서도 도로변의 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그렇지않아도 최근에는 그린벨트나 도시계획 구역안의 묶었던 각종 제한행위의 완화 해제 이야기가 심심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원래의 원칙은 고수하면서 합리적인 개선이 이뤄질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나 국토가 좁은 우리현실에 국토계획은 장기적 안목에서 마련되고, 개선할 필요가 있을 때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금지된 것을 풀기는 쉬워도 한번 푼것을 다시 묶기는 어려운법이다.
아직도 늦지는 않다. 다시한번 숙고하는 용기를 갖도록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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