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구두까지 태워 송구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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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저도 학생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는 알아요. 하지만 우리처럼 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 서민들이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해야지요.』
지난달 29일 서울중앙대에서 있었던 서울시내 6개 대학 연합시위때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2평짜리 가게를 불태워 일터를 잃은 유기학씨(65·구두수선공).
15년동안 한 자리에서 일하면서 숱한 학생시위를 지켜보았지만 이번에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처음보고『정말 놀랐다』고 말한다. 교문앞에 늘어선 점포들이 불탈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도 알텐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 유씨는 『만약 경찰관이나 주민의 몸에 불이라도 붙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걱정했다.
학생들의 목적이 주민들에게 재산피해를 주거나 경찰을 다치게 하려는 것은 분명히 아닐텐데 정작 시위는 마치 그것이 목적인 것처럼 되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유씨는 이날 2평짜리 가게일부가 타고 출입문유리창이 모두 깨져 경찰조사로 1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유씨는 『가게벽이 타면서 수선해놓은 손님구두 2켤레도 타버렸다』며 『손님이 찾으러오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가게에서 하루 1만5천여원 벌이로 전문대학에 다니는 외아들등 4식구 생계를 빠듯하게 꾸려왔다는 유씨는 당장 며칠간 빈손으로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답답할뿐이라고 말했다. 가게수리에도 이틀은 걸릴 것이지만 경찰이 마구 쏘아댄 최루탄가루가 교문근처에 쌓여 4∼5일은 가기때문에 손님이 끊길 것이라는 것.
해방, 6·25, 4·19, 5·16, 10·26, 12·12등 역사의 파동을 겪으며 환갑을 지낸 유씨는 『이제 학생들의 데모가 그만 그칠때도 됐는데 갈수록 심해지니 어른들의 잘못인지, 어린 학생들의 잘못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제발좀 느닷없는 최루탄가스·화염병에 놀라는 일없이 마음놓고 장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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