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 속의 「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희게 빛나는 작은 동그라미가 스웨터의 털 보푸라기 위에 얹히듯 머물러 있었다. 겨울 햇볕이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어느 오후였다.
그 입자에 눈을 가까이 가져가 보았다. 눈 가까이 바싹 다가온 작은 입자는 커지면서 무지개 빛으로 아롱지며 수정의 화살촉처럼 질서 있게 확산되며 공기 속에 여울지고 있었다. 빛의 결정이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웠고, 또한 그것은 내게 있어 경이로운 발견이기도 했다.『희랍인 조르바』란 소설이 영화화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진 희랍인 작가 「니코스· 카잔차케스』는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어두운 심연에서』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사람은 나무들과 동물들과 사람들과 생각들로 이루어진 자기 나름의 원(서클)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이 원을 구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이것을 구원하지 않으면 그도 구원받을 수 없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다시 말해서 그를 둘러싼 원 속의 나무들, 동물들, 인간들, 생각들을 구원하는 일은 죽기 전에 완수하지 않으면 이밖에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
결국 어떤 보이지 않는 거 대한 손에 의하여 만남들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필연적인 것으로 사람마다의, 또는 삼나만상의 구원을 위해 마치 바둑판의 말처럼 인생 도상에 놓여지는 것이리라.
어쩌다가 단체에 끼어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일행은 열 두 사람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뺀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해야 하는 공간의 이동이었다.
시내 관광이나 시골길에서는 버스가 많이 이용되었는데, 버스라는 축소된 공간에서는 일행들의 사람 됨됨이가 잘 보여졌다. 장점보다는 그 단점들이 더 쉽게 노출되어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열 두 사람들 중에서 꼭 한사람이 영 보여지지 않았는데, 희미하게나마 보여질 때는 반대로 결점보다 장점 쪽이 쉽게 파악이 되었다. 그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끝내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 놓지 않았다.
그는 다름 아닌 바로『나』자신인 것이었다. 마치 남의 얼굴 표정이나 생김새 또는 모습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으되, 내 얼굴이나 모습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귀국 후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후 『나』는 내게 서서히 부각되어졌다. 그것은 일행들과의 여러 성격의 관계의 결과를 통해서였다. 내가 나 자신을 직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