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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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지아주 (미) 아틀랜타발=우주의 창조자인 신은 어젯밤 중요한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그는「영향력 체감증 (체감증) 에 걸려 고통을 받아왔다.이 소식을 전해들은 세계의 유명인사들이나 일반시민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믿을수없다는 표정이었다. 캔자스 시티의 한 이발관에서 만난 「해리트루먼」 전대통령은 『난 누가 죽었다고만 하면 서운해 부끄러운 노릇이야』 라고 말했다.
이것은 20년전 미 시사주간 타임지가 특집한 『신의 죽음』 이란 기사에 인용된 글이다. 미국의 감리교신학생들이 만드는 「모티브」라는 잡지에 실린 허화를 옮긴 것이다.
「신의 죽음」은 처음듣는 얘기는아니다. 벌써 19세기말 철학자 「니체」 가 그렇게 갑파했었다. 그는 서구의 정신사를 지배해온「역사적신」 의 죽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 뒤에 「토머스·J·J·알타이저」나 「키에르케고르」, 「본회퍼」 같은 신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은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건이후 극치에 이르렀다. 4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즘을 목격하며 사람들은 『과연 신은 있는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은 「존 C·머리」 같은 신학자가 『사람들이 너무 일에 좇겨 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는 말로 신에의 무관심을 주목했다.
이런 실감있는 얘기도 있다. 타임지는 한 소년의 입을 빌어 『나는 하느님은 좋아하지만 교회는싫어요』하는 말을 소개했다.
부활절을 맞아 무수한 교회들이 합창하는 할렐루야를 들으며 문득 그 타임지의 특집을 생각하게 된다.
신의 부활은 기독교사의 우여한사건이 아니다. 신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근본의 사건이다. 「부활」 이 없었으면 기독교는 이승의 삶과 저승의 삶을 논리적으로 설명할수있는 근거를 잃는다. 그보다도 신앙, 그 자체가 공허해진다.
그러나 현대의 「에리히 프롬」 같은 사회학자는 「신의 죽음」보다 「인간의 죽음」 을 얘기하고 있다.
『19세기에는 신이 죽었지만 20세기에는 인간이 죽었다』는 것이다.
무슨말일까. 사람들은 사람다움을 잃고 산다는 뜻이리라. 고통을 이겨내는 이성과 의지, 사랑을 베푸는 희생, 도덕적인 삶의 추구를 잃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필경 신을 볼수도, 느낄 수도 없을것이다.
부활절은 비단 기독교인들의 축일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종교적 교훈으로 새겨보는 것도 뜻이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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