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시장의 가스통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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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트럭에 실렸던 소형가스통이 바닥에 떨어져 폭발, 서울 남대문시장의 상점수백채를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든 사고는 새삼스럽게 놀랄 일이 아니다. 벌써부터 예고되었던 시한부 사고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고는 예고가 없는 법이지만 가스사고만은 충분히 예견되었고 시한폭탄처럼 항상 불씨를 안은 조마조마한 상태에 방치되어 왔다.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아파트 가스폭발사고때는 물론이고 지난해 9월 과천에서 일어났던 염산트럭과의 버스충돌사고때나 인도 보팔시의 MIC가스 유출참사때도 「이제는 가스에 대비해야할 시기」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공염불에 그쳐온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이번 사고는 한마디로 무신경과 방심,무방비가 빚은 대형사고의 표본인 셈이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대낮 도심에서 발생한 것임에도 피해가 너무 컸다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적었다고 하나 서울시내 소방거가 모두 동원돼 소화작업에 나섰으나 5백13개 점포 가운데 4백19개 점포가 불탔다. 이는 시장이나 초장·대형집합건물에 대한 광화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을 일이다.
소방당국은 5분 대기조까지 편성, 기동성을 자랑하며 공개시범훈련까지 해왔으나 이번 사고에서 허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시장의 도로가 노점·잡상인 등과 고객들로 붐벼 소방차가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실정에서 현대식 소화장비가 무용지물임이 입증됐다.
오늘날 에너지 소모가 급증하면서 가스사용이 대량으로 보급되고 있다.
가정은 물론이고 대중접객업소나 대형건물·병원·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가스는 이제 없어서는 안될 주요에너지원이 됐다.
이에 따라 가스를 운반하는 가스수송차도 늘고 지하에 매설된 가스배설의 연장이 길어져 가스폭발의 위험성은 도처에 잠재해 있는 셈이다.
가스소비가 비교적 적었던 지난 77년부터 7년동안의 가스사고만 해도 각종 폭발사고가 1백40여건이나 발생, 7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이들 사고의 원인이 대부분 안전관리의 부왕의 탓이었고 제품부량이나 ,시설미비, 배관불량 등으로 분석되고있다.
가스는 조그마한 불씨나 순간적인 스파크만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대형참사를 빚어내는 무서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가스의 위험성이 다른 어느 연료보다 크고 장차 액화천연가스(LNG)가 들어오면 보다 대량 보급되는 추세에 있다. 이같은 추세를 외면하고 각종 취급기준이나 안전대책 등 법과 제도상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각종 안전수칙의 재정비 및 확인과 점검의 제도화는 물론이고 수칙의 생활화를 위한 계몽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각종 수칙의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길거리의 차량단속도 단순히 교통단속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위험물 적재화물을 샅샅이 가려내 위험요소를 사전에 막아야 할 것이다.
당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가스안전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해 완벽한 대책을 세워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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