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국립현충원서 만난 서울의 특별한 벚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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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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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출연자

서울에 봄이 오면 많은 사람이 활짝 핀 벚꽃을 보려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여든다. 꽃이 아름다울수록 꽃놀이 가는 길은 더욱 붐비게 마련이다. “벚나무 그루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농담할 정도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 곳이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이곳에 가면 벚꽃 구경과 함께 엄숙하고 신성한 기운에 휩싸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이기에 나무 하나, 꽃 한 송이에서도 애틋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서울에 처음 도착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2010년 6월 6일,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친구 한 명이 한국의 현충일은 휴일이니 그곳에 함께 가 보자고 했다. 그의 제안에 상당히 감동했다. 미국에서 살 때 내 나라의 현충일을 그냥 하루 쉬는 날로 여겼던 자신이 다소 부끄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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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에선 감동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가기 전에는 그곳이 미국의 묘지처럼 울적한 공간일 것으로 상상했다. 물론 국립서울현충원도 전사자들을 기리는 묘지이지만 동시에 생명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공간이기도 했다. 줄지어 서 있는 비석 주변을 아름다운 언덕과 나무, 연못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현충일이라 많은 사람이 가족·친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의 묘를 찾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였다. 도시락을 싸 와서 돗자리를 깔고 먹고 있는 가족도 있었고, 불고기와 잡채에 소주까지 곁들이는 가족도 여럿 보였다. 그런 광경이 내겐 아직 살아 있는 분들이 돌아가신 분들과 한자리에 모여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함께하며 과거의 추억을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사를 넘어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아름다운 여름날도 함께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현충원은 묘지이자 공원이며 성당과 사원처럼 느껴졌다. 이런 것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기에 더욱 잊지 못할 공간이었다. 그 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현충원을 찾고 있다. 특히 봄이 되면 벚꽃이 유별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더한다. 피어난 벚꽃은 새로운 생명이기에 고울 수밖에 없는 데다 눈송이처럼 비석 사이로 떨어지면서 지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떨어지는 꽃잎 하나마다 그날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과 추억이 함께할 것이다. 동작동 벚꽃은 삶과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이 서로 엉켜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마크 테토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