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교포사회 학술·문화관계 모임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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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자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남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내적 필요성을 느낀다. 인간은 남들을 필요로 하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낯선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상호간의 접촉과 도움을 더욱 필요로 한다. 그들의 사회적 형성은 상호간의 실질적 도움이 필요해서 뿐만 아니라 오로지 의로움을 달랜다는 정신적 필요성에서도 요청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인이 모여 사는 미국의 각처에 한국인의 모임이 생기고 단체가 구성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이 집중해 있는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같은 큰 도시일수록 한국인의 모임이 많고 단체의 수가 늘어남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욱 바람직하다.
우선 총괄적 단체로서의 한인회가 대소도시에 있다.
한인회의 선거운동 등을 둘러싼 잡음이 심심찮게 신문에 보도된다. 이밖에도 그 성격이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개별적 단체와 모임은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모임과 단체 중에서도 교포들에게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적 모임이며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게 교회다.
교포 몇십 명이 모여 사는 도시나 지방에는 어느 틈에 벌써 목사가 나타나서 교회가 생기고 주일이면 예배를 본다. 교회 인구가 좀 늘면 어느덧 교회는 내분을 일으켜서 둘로 갈라지고 넷으로 쪼개진다. 한국인이 많은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에는 몇백 개의 교회가 있다고 추산된다.
틀림없이 교회는 교포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단체다. 이러한 사실은 미주 판 일간신문의 한 면을 매일같이 차지하는 종교 난의 존재로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무슨 부흥회, 무슨 교회 아무개 목사의 설교광고가 사진·학력 등과 아울러 크게 예고되고 보도된다.
잡음이 많고 더러 추문도 끼어 들지만 한국인들에게 있어 교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첫째로는 어느 정도 진실한 종교적 믿음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교회는 일요얼마다 신자들의 모임 장소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예배를 보고 종교적 경험을 얻기 위한 곳도 되겠으나 그러한 목적을 떠나서 일주일에 한번이나마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한국말을 쓰고,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갖고있는 동포들끼리 만난다는 장소라는 사실만도 귀중하다. 그곳에서 교인들은 외국에 사는 외로움을 덜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 즐거움을 함께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정신적 역할을 떠나서 교회는 실질적인 역할도 한다. 한글학교가 만들어지고 처음 이민 오는 사람들이 다른 교인이나 목사들에 의해서 구체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에게 있어서 교회는 본국에서나 미국 내의 한국인에게서처럼 중요한 위치를 갖지 않는다. 어째서 유독 한국에서 기독교가 급속도로 육성되고, 어째서 한국인에게 기독교가 어필되는가의 문제는 사회학적· 인류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극히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된다. 어쨌든 교회가 특히 미국 교포 생활에 가장 중요한 모임이고 단체며 그 역할이 귀중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만약 한국인의 모임과 단체가 교회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교회는 아무래도 특수한 하나의 이데올로기, 세계관을 대표해 주는데 불과하다. 그것은 역시 하나의 종교에 불과하다. 더구나 원래 우리 전통적 세계관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어떤 특수한 테두리 안에 스스로 갇혀있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시야를 좁히고 우리들의 비평적·개방적 정신을 포기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활은 종교적 차원만이 아닌 다양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곳 한국인 사회에도 교회라는 사회· 단체 외에 보다 학술적인 단체, 문화적인 모임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육성되어야한다. 본국에서 원조를 받고 있긴 하지만 재미 과학자협회 등과 같은 학술단체, 그밖에 가지가지 문화단체가 육성되어 학문적인 교류와 상호 격려, 문화적인 발전과 적극적 참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미국에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교포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모임이 종교단체나 친목회의 범위를 차츰 벗어나 우리 교포들의 다양하고 건전한 발전을 위한 사업에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인정하기를 바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문화· 학술 단체들이 조직되고 활동이 시작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유태계 미국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박이문<미시먼즈여대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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