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사고 "꽝" 부딪쳤는데 몇초 만에 다시 제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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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이탈리아 코포 노브사는 2년 전 날씨가 더워지면 소매가 자동으로 말려 올라가고, 서늘해지면 다시 펴지는 와이셔츠를 개발했다. 형상기억합금 한가닥당 합성섬유 5가닥꼴로 옷감을 짜서 만든 옷이다. 형상기억합금에는 실내 온도가 평상시보다 몇도 높으면 본래 길이로 줄어들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일본 도호쿠대는 지난달 시각장애인용 점자표시판을 개발했다. 아주 적은 전기를 흘려주면 핀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게 하는 형상기억합금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핀의 길이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5~0.3초. 이 정도면 간단한 통화 내용을 표시할 수도 있다. 이 핀에는 단지 전기만 공급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 제품에 필요한 모터 등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어 소형화가 가능하다.

형상기억합금의 쓰임새가 다양화하고 있다. 이 합금은 원하는 모양을 기억하고 있다 적정한 온도가 되면 그 모양으로 복원되는 기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 때 우주선이나 산업용으로 쓰이던 형상기억합금이 이제 안경테, 혈관 확장용 그물망, 치아 교정용 철사, 브래지어 등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다.

형상기억의 비밀은 원자의 배열에 있다. 보통의 금속은 펴거나 늘이거나, 열을 가해도 그 원자 배열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형상기억합금은 온도를 높이거나 냉각하면 배열 자체가 바뀐다. 그러나 일정 온도가 되면 이전의 배열로 되돌아가면서 형태까지 복원되는 성질을 갖는다.

형상기억합금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38년 미국 하버드대와 MIT 공동연구팀에 의해서였다. 요즘 가장 많이 쓰는 형상기억합금인 니티놀은 미 해군 병기연구소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한 연구원이 담뱃불을 금속에 대자 꿈틀거리는 현상이 목격된 것이 계기다. 니티놀로 위성 안테나를 만들었다고 해보자. 니티놀로 접시형 안테나를 만든 뒤 섭씨 4백~5백도에 30분 동안 놔두면 그 모양이 기억된다. 일상 온도에서는 꽉 눌러 찌그러뜨리거나 뭉쳐 놓으면 그대로 있다. 그러나 일정 온도 이상으로 열을 가하면 그 합금 뭉치는 어느새 위성 안테나 모양으로 복원된다. 우주선으로 큰 안테나를 나를 때 부피를 줄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다.

안경테를 밟아도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형상기억합금테가 시판되고 있다. 잘못해 찌그러뜨렸다해도 따뜻한 물에 담그면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 온다.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금속 줄은 온도에 따라 늘어졌다 줄어들었다하는 운동을 반복한다. 이런 특성은 인공 근육을 만드는 데 이용할 있다.

최근에는 열이 아닌 자석의 힘을 가해도 그 같은 특성이 나타나는 합금, 합금보다 훨씬 더 값싼 형상기억 플라스틱도 개발됐다. 이는 형상기억물질의 대중화 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형상기억합금은 값이 비싸고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형상기억 플라스틱은 만들기도 쉽고, 값도 합금의 10분의1 이하로 싸다.

MIT GWRI연구소는 섭씨 70도에서 몇초 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 오는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이런 플라스틱을 자동차 앞 부분에 사용하면 부딪쳤을 경우 열만 가하면 원상복구될 것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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