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교과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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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마 학부모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이다. 더도 말고 내일 아침 중학이나 고교에 가는 자녀의 가방을 한번 열어봐도 실감할 것이다.
우리나라 중·고교 교육은 마치 세상 만사를 총람하는「만물상」교육이라도 하는 것 같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교육의 결과가 뭐냐는 것이다. 아마 그 대답을 자신있게 할 사람은 일선교사를 포함해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문교 당국자도 짐작하는 일이리라.
사실 대학입학 학력고사 및 고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을 줄여야한다는 논의가 제기된지는 오래된다.
민정당도 오죽하면 지난 번 선거공약으로 현재 15∼16개로 되어있는 대입고사과목을 8개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약까지 했겠는가.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일선교사 및 교육과정 전문가가 중심이 된 확대론도 만만치않아 결론은 새로 발족한 교육 개혁 심의회에 넘어갔다.
물론 과목축소를 반대하는 의견에 일리는 있다. 그럴 경우 제외되는 과목이 정상 운영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고사에서 제외된 과목의 담당교사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문제에 대한 접근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질적 향상이란 「대의」에서 이루어져야지 그 밖의 이유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오늘의 교육이 2천년대를 살아갈 인제를 양성하는데 있다는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도대체 우리나라 중·고생만큼 세계에서 제일 공부많이 하는 학생은 없다. 그런데로 작년초 서울대학교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력시험을 친결과 응시자의 평균 점수가 영어 만점, 수학 20점이었다는 사실은 만물상식 학습이 얼마나 낭비적인가를 한마디로 말해주고 있다.
고교교육과정이 단순히 대학입시을 준비하는 과정이어서는 물론 안되지만 그렇다고 실속도 없는 백과사전식 교육을 왜 고집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가령 실업이란 과목만 해도 『요즘학생들 소키트도 제대로 못만진대서야 쓰겠느냐』고 한전 집권층의 발상에서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목하나가 통치자의 즉흥적인 말 한마디로 생긴 것도 문제지만 그 과목이 있고 난 지금 소키트를 만질줄 아는 고교생이 몇이나 되는가. 결과적으로 그 지시는 「기술」말고 또하나의 과목만 만들어 학생들의 학습부담만 늘린 격이다.
비슷하거나 같은 교과내용을 각급학교에서 증복해서 가르치는것 또한 문제다. 서독의 실과교육을 보면 대패질이나 전선잇기등의 과정을 패스하면 카드에 기록, 진학을 하거나 전학을 해도 그 과목은 다시 배우지 않아도 되도록 면제를 해주고 있다.
또한 배워야할 과목이 많아지만 출제도 형식에 흐르게되고 단순지식 이외의 고등정신기능의 평가는 불가능 해지고 만다.
교육개혁이 그렇듯 학과목의 조정 역시 2천년대를 살아가는 지적수요에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고도산업화 사회가 이룩될 그때쯤 오늘의 학생들이 밤잠을 못자면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소용에 닿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이 더욱 중시될 그때를 대비해서 교육 개혁의방향은 「서일」과「양」위주보다는「개성」과 「질」위주로, 「모방」보다는「창조」를 북돋워주는 쪽이 되어야 한다.
짐을 잔뜩 진 노새와 제트엔진을 단 비행기의 비유와 같은 우리의 교육은 이제 대담한 전환의 시점에 있다.
우리가 교과목의 축소를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미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지혜로운 대흥이라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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