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손에 땀 쥐게 한 총선 개표 격전지 | 역전될 때마다 환호·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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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전에 다시 역전-혼전을 거듭한 대역전의 드라머 끝에「은메달」은 태어났다.
「신당돌픙」에 1위를 신민당 후보에게 뺏긴 서울 성북과 대구 중-서구에서는 여야의 중진이, 제주에서는 2선 의원과「정치재수생」이 13일 하오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시소게임을 벌였다.

<서울성북>
봉합이 제대로 안된 투표함시비로 개표가 7시간30분이나 지연되는 바람에 전국에서 가장 늦게 13일 하오 2시40분에야 개표가 완료된 서울 성북구는 신민당 후보로 나선 신인 이철 후보가 예상을 깨고 처음부터 선두를 질주한 반면 현직장관인 민정당 김정례 후보와 4선 관록의 민한당 조윤형 후보가 훨씬 뒤에서 근소한 표 차로 2∼3위 다툼을 벌여 전국의 관심을 모았다.
『신민 이철 8백16·민한 조윤형 5백25·민정 김정례 5백1표』
개표시작 15시간50분만인 13일 하오 2시40분 마지막투표함인 돈암1동 제4투표함의 개표결과를 발표하는 김성만 성북 제2투표소 선관위원장의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렸다.
장내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손에 땀을 쥐고 밤새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양측 정 당원들조차 웅성거림을 그쳐 개표장안은 엄숙하기까지 한 분위기.
그러나 잠시 후 승리를 실감한 김 후보측 당원들은 박수와 환성을 터뜨리며 서로 껴안고 악수를 나누었고 침통한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를 떠나는 조씨 측과 대조를 보였다.
김 후보 8만1천1백16표, 조 후보보다 불과 1천25표 차의 승리였다.
지구당사무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당원들과 개표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김 후보는 현장으로부터 당선보고에 당원들의「만세」에 파묻혀 즉석 소주파티를 벌여 당원들의 그동안 노고를 위로.
김 후보는 개표가 시작된 전날『몹시 피곤하다. 일찍 자겠다』며 하오 시쯤 삼선동 자택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13일 상오 3시쯤 지구당서 달려온 당원으로부터 개표중단소동보고를 듣고 상오 4시쯤 중앙당으로가 보고와 함께 대책을 협의한 뒤 지구당에 나와 개표상황을 지켰었다.
김 후보는 조 후보와의 시소게임에 안절부절못하는 당원들에게『당선되고 안 되고는 하느님의 뜻이다. 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근소한 표 차로라도 당선이 된다면 내가 국회에 들어가 할 일이 남았다는 뜻으로 알고, 낙선된다면 밖에서 할 일이 있다는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한다』며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 지역의 첫 개표결과는 이·조·김 후보 순으로 근소한 표 차가 났으나 부재자 투표함이 개봉된 후 한때 김 후보가 이 후보를 추월해 선두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13일 자정을 넘기면서 이 후보가 훨씬 앞서나가자 싸움의 양상은 김·조 후보의 은메달 쟁탈전으로 변해 김·조 후보의 표 차는 13일 낮12시쯤 2백90표까지 좁혀졌었으나 이후 근소한 차이나마 더 이상의 역전 극은 없었다.
김 후보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던 상오 10시30분 쯤 조 후보의 부인 김정권씨(43)는 개표장인 성신 여대에서 한때 실신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지구당원들과 소주파티 후 6시50분쯤 경쟁자였던 이철·조윤형 두 후보 사무실을 인사차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중앙당으로가 당선보고와 인사를 한 뒤 이재형 당고문 등 원 노 댁을 방문, 인사.
이 후보는 김 후보 내방소식을 듣고 하오 9시30분쯤 지구당사무실로 답례방문을 했으나 김 후보를 만나지 못했고 개표함봉인 허술 을 지적, 개표중단사태를 빚었던 조 후보측은 문제의 5개 투표함개표결과로도 큰 추세의 변화가 없자 깨끗한 승복의 자세.

<대구 중-서구>
대구의 정치 1번지 중-서구는 한병주(민정)·이만섭(국민)후보와 정치신인 유성환 후보(신민)의 대결이었으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유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고 은메달을 놓고 이· 한 후보는 개표가 시작 된지 16시간50분 동안 사투를 벌여 이 후보가 1천9백64표 차로 대역전 극을 연출, 은메달을 겨우 따냈다.
12일 하오 8시30분 부재자와 내당동 제1투표소의 투표함을 열면서 시작된 마라톤의 선두주자는 예상대로 한 후보였다.
한 후보는 7천9백30표를 얻어 1천9백32표의 이 후보와 1천5백73표의 유 후보를 예상대로 누르고 리드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내당동 투표함에서부터 신민 유 후보의표가 대량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표장 곳곳에서『아니 저럴 수가!』하는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4선」의 두 거함이 정치신인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펀치를 1대씩 맞고 뒤뚱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퍼차림의 유 후보측 운동원들이 개표장을 들락거리며 싱글벙글 해하는 한편 한·이 후보측은 굳은 표정들.
자정 무렵 유 후보의 1등 당선이 확실해졌다. 상오 2시.『바람만 일으키고 떨어진다』는 소문이 나있던 유 후보가 서구청 개표현장에 V자를 그리며 개선장군처럼 나타났다.
유 후보는 허리를 90도 굽혀 개표종사원들과 참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이때부터『2등을 누가 하느냐』로 이·한 후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상오 3시30분 중구 투표함의개표가 시작되면서 이 후보의 반격이 시작돼 상오 5시를 넘으면서 이 후보는 이때까지 한 후보에게 뒤졌던 3천8백45표를 1천여 표 차이로 줄였다.
그러나 남은 투표함들이「한병주 표밭」에서 옮겨온 것들이어서 한 후보의 승리를 점치는 수군거림이 일부 참관인들 사이에 오갔다.
13일 상오 11시 아파트단지인 서구 평리5동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전세는 최초로 역전됐다.
이 후보가 한 후보를 43표 차로 눌렀고 낮12시30분에는 이·한 후보의 표 차는 1천74표로 벌어졌다. 하오1시에는 1천3백90표, 하오 1시15분에는 1천5백3표로 끝내기가 시작 된 듯했다.
그동안 숨을 죽이고 개표를 지켜보던 이 후보의 운동원들 중에는 하나 둘 복도 밖으로 나와 서로 엉켜 엉엉 우는 사람도 있었다.
하오 1시2O분 서구의 마지막 투표함인 본리1동 제2투표소의 92번째 투표함이 쏟아지면서 표 차는 1천9백64표로 늘어났고 16시간50분간의 드라머는 결국 이만섭 후보에게 은메달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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