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불편한 영화 광고와 집단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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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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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네바다주립대 경영학부 3학년

영화관에 갈 때마다 불편한 광고 두 개를 본다. 하나는 한 대형 극장이 후원하는 ‘프리미엄 코리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수 이선희씨가 노래하는 ‘힘내라 코리아’다. 둘 다 좋은 취지다. ‘우리는 한국이 자랑스러운 나라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어려워도 힘을 내라 코리아!’라는 내용이니까. 그럼에도 왠지 불편하다. 왜일까?

노래로도 만들어진 명연설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Yes. We can!”을 10번 넘게 반복한다. 이 문장의 주어인 ‘우리(We)’는 ‘나(I)’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룬 집단이다. 그러기에 그의 연설에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호응했던 것이다. 반면에 이들 광고는 내가 자랑스러운 사람임을 상기시켜 주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운 나라임을 강조한다. 개인이 행복한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행복의 날까지 힘을 내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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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장강명의 장편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 나오는 여주인공 계나는 왜 호주로 이민을 떠났느냐는 질문에 애국가와 호주 국가를 예로 든다. 애국가에서는 하느님이 보우하는 것도 대한민국이고 만세를 누리는 것도 대한민국이다.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로 시작한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떠난 이유라고 그녀는 말한다. 영화관의 광고가 불쾌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집단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왜 내가 자랑스럽고, 나로써 행복하면 안 되는 거야?”를 무의식 중에 묻게 된다.

물론 집단주의가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한국이 짧은 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데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집단주의가 과해지면 전체주의나 파시즘이 될 수 있다.

페이팔의 공동 창립자 피터 틸은 자신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불명확한 비관주의’에 대해 말한다. 유럽 내 많은 젊은이는 미래에 비관적이지만 얼마나, 그리고 어떤 식으로 더 나빠질지 모르기에 사회적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보다 자기 충족적인 사소한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많은 한국인 또한 이런 ‘불명확한 비관주의’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도 구성원들에게 ‘1000번은 흔들려야 한다’ ‘힘내라 대한민국’ 같은 상투적인 말 대신 ‘너 스스로 행복하면 돼’ ‘너만의 행복을 찾아’라고 다독여 줘야 할 때가 아닐까.

조재현 네바다주립대 경영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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