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인사이드] '신격호 부의금' 롯데가 소송전…부의금일까 증여금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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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금(賻儀金). 상가(喪家)에 애도의 뜻으로 보내는 돈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내보낸 이를 위로하고자 건네는 친척ㆍ지인들의 성의 표시이지요. 하지만 재벌가에선 형제 간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이기 때문일까요.
최근 불거진 롯데가(家)의 부의금 반환 소송 사례를 보겠습니다.

2005년 1월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첫째 여동생 신소하씨가 숨을 거둡니다. 소하씨에게는 장남 서정규(64)씨 등 5남매가 있었습니다. 그해 4월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둘째 동생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은 조카인 정규씨에게 수십억원의 부의금을 건넸습니다.

이에 2013년 소하씨의 차녀 서정림(54)씨는 5남매가 부의금을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며 1억원을 달라는 소송을 냅니다. "다른 남매들이 나 몰래 돈을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도 하면서요.

기존 판례를 보면 부의금은 일반적으로 유족들이 각자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만큼 나눠 가지게 됩니다. 상속인 중 특정인과 더 관련이 있는지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 등이 건넨 돈을 부의금으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했지요.

법원의 판단은 "부의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의금 명목으로 준 돈의) 액수에 비추어 보더라도 사회통념상 도저히 친족 간 부의금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그 대신 “(신 총괄회장 등이 준 돈은) 장남이 어머니를 대신해 형제를 돌보라는 뜻으로 준 증여로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부의금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정규씨가 형제들에게 공평히 나눌 의무도 없다는 뜻이지요.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정림씨가 정규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습니다.

그런데 서정규씨는 도대체 정확히 얼마를 받았던 걸까요. 법원은 이에 대해 명시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돈을 건네 준 이후 서씨 남매들이 각각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 등에 비춰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가족의 죽음을 위로하는 돈조차 법정에서 정해야 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재벌가 형제들의 부의금 소송전을 보는 일반인들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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