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구한 향촌의 밤정경을 실감나게 그려|『까치소리』=재치는 있으나 지나친 서정엔 아쉬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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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조는 초장과 중장에서 3·4조 또는 4·4조가 네번이나 반복됩니다. 이와 같은 단조로운 율조가 거듭거듭 반복되면 타성이 생겨서 긴장이 풀어집니다. 만일 이런 반복이 종장까지 일관되었다면 시조는 하나의 시형으로서 실패작이 되어 한시나 옛날 민요처럼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조는 종강에 3·5·4·3조라는 오묘하고도 흥미진진한 운율적 구조를 배치함으로써 우수한 시형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종장의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첫구의 3음은 앞에서 반복되어 온 3·4조의 운율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계승한 대목입니다. 그러나 둘째구의 5음은 돌풍과 같은 변조를 보여 종장이 초장 중장의 단조로운 반복을 거부하는 개성적 구조임을 강조한 대목으로서 태풍의 눈에 해당합니다.
이어서 세째구와 네째구의 4·3조는 시조의 기조인 3·4조를 뒤집은 것인데 한편으로는 둘째구 5음을 도와 타성을 거부하는 구실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체가 3·4조라는 기억을 환기시켜 화합하는 구실을 함으로써 전편을 무리없이 수습하는 대목입니다. 시조 종강은 한시의 전결구를 합친 것과 같고 교향악의 제3악장과 제4악장을 합친 것과도 같다고 앞서 지적한 말을 다시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새날을 여는 몸짓』은 신년시답게 맑아서 즐겁습니다. 이런 시는 짓는 이도 즐겁거니와 읽는 이에게도 새로운 용기를 주지요.
『정화 앞에서』와 같은 신앙과 관련된 시를 짓기는 참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편협된 관념에 빠져들기 쉽고 그렇지 않으면 통속적이고 직설적인 언어의 나열이 되기 쉽습니다. 독자적인 정서나 상념을 보편화한 그것으로 완전히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한룡운선생의 시편들은 좋은 교본이 될 것입니다.
『겨울밤』이 실감나게 보여준 구수한 향촌의 밤정경도 좋고, 『까치소리』의 중장에서 보여준 재치도 뛰어났군요.
생활시조라고 너무 서정시 일변도로 가는 일반적인 경향이 좀 아쉽습니다. <장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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