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17) 배종순의 하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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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말 이상한 소리였어요. 우리 부산합동대는 당시 초등에 성공한 크로니팀의 박영배씨와 송병민씨가 서로 고립되는 위기 상황이 벌어진 줄 몰랐거든요. 때문에 그 소리의 주인공이 박씨나 송씨일 거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못했어요. 오히려 토왕폭이 크로니의 산꾼들에게 처녀를 내주던 광경을 지켜보다 말고 돌아선 에코팀의 투박한 총각들이 내지른 고함인가 했지요."

배종순씨는 토왕골 들목에 있는 비룡폭포 위쪽 베이스캠프에서 하산하는 유기수씨의 에코팀을 만났었다.

"그때 기수형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아무 대꾸도 없더군요. 어디 그 말이 제대로 들리기나 했겠어요. 하지만 다른 후배들은 몹시 흥분해 있더라고요. 그들 가운데 누가 홧김에 지른 고함이 아니었을까요?"

하긴 서로 연결한 자일을 놓쳐버린 박영배씨와 송병민씨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고함을 내질렀겠지만, 그 소리가 멀리 떨어진 비룡폭포까지는 전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배종순씨가 추측하는 그 '에코설'도 곧이 들리지는 않았다. 유기수씨는 바위에서 떨어질 때 '앙카'소리조차 지르지 않고 자신의 추락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무섭도록 냉정한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이 깨져도 소리치지 않는 바위 같은 유기수씨는 속으로만 노래하는 '침묵의 산꾼'을 대표했다.

"아니! 그럼 누가 그런 소리를 질러댔단 말이오?"

유기수씨의 에코팀에서 낸 소리가 아닐 거라는 내 주장에 배종순씨는 짜증스레 반응했다. 내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더 짓궂게 내질렀다.

"그럼, 정말 그런 소리를 듣긴 들은 거요?"

"거참! 박형도 답답하네. 우리가 왜 없는 얘기를 꾸며내겠소. 나뿐만 아니라 그때 비룡폭포 위에 있던 부산합동대의 대원들이 다 들었다니까."

그제야 나도 고백했다.

"사실 권경업씨에게서도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그렇다니까. 그럼 그게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혹시 토왕폭이 낸, 토왕의 소리가 아닐까요? 왜 얼음이 얼거나 깨질 때 비명소리를 지르잖아요. 아무튼 그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해요. 아무래도 다시 들어보러 토왕폭으로 가봐야겠어요."

그렇게 그 소리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그 토왕폭의 사나이는 그해 겨울 아이거 북벽으로 떠났는데 다시는 토왕골을 찾아갈 수 없었다. 그는 토왕폭에서 줄을 함께 묶었던 자일 파트너 김원겸씨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죽음의 빙벽'으로 불리는 아이거 북벽을 겨울에 완등했으나, 하산길에 악천후를 만나 두 사람 모두 정상 부근 설원에서 탈진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부산합동대의 토왕폭 제2등의 하객인지 그들이 등반을 마친 1977년 1월 25일, 두 명의 산꾼이 토왕골로 찾아 들었다.

그들은 토왕폭을 뚜렷이 볼 수 있는 폭포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가 3백m 길이로 드리워진 얼음기둥을 서너 시간 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내려갔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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