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팻감이 많은 것도 두터움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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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8강전 1국> ○·탕웨이싱 9단 ●·박정환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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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보(141~154)=우하귀 쪽 41부터 다시 본다. 이 수가 치명적인 실착이었다. 이 수로는 흑A로 백 한 점을 따내 중앙이 봉쇄된 하변 흑 대마를 안정시켜야 했다. 그랬으면 불리해도 호흡이 긴 승부였다. 41은 뒤진 실리를 빨리 만회하려는 의도였으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하변 42로 뛰어들어 44, 46으로 패가 되었고 국면도 순식간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졌다.

백은 이 패에 부담이 없다. 굳이 패를 이기지 않아도 다른 큰 곳을 두 번 둘 수 있으면 충분한데 흑은 이 패의 결과가 승부로 직결되기 때문에 총력으로 매달려야 할 처지다. 47로 먼저 따냈으나 팻감은 백이 많다. 당장 찔러 들어온 48이 서슬 퍼렇다(50…44). 51로 잡을 수밖에 없을 때 52, 53으로 굴복시킨 뒤 거침없이 54로 젖혀간다. 박정환에겐 팻감이 B, C 정도인데 탕웨이싱은 ‘참고도’ 백 1로 끊어 팻감을 양산하는 공장을 가동시킬 수 있다.

동굴에 갇힌 검은 이무기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단 하나, 하나가 모두 팻감이 된다. 공격적인 팻감이 많다는 것도 일종의 두터움. 두터움은 들끓는 승부의 욕망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무게중심이 되기도 한다. 창고를 가득 채운 농부가 겨울을 맞는 마음이랄까. 바로 지금 탕웨이싱의 심정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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