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트에 3200억 쏜다” vs "생태계 황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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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CJ헬로비전과 합병을 추진 중인 SK브로드밴드(SK텔레콤 자회사)가 앞으로 1년간 3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영상 콘텐트에 집중 투자한다고 8일 밝혔다. 합병 법인의 콘텐트 육성 비전을 밝히는 차원이다. 이는 국내에서 한해 만들어지는 드라마의 약 절반(16부작 드라마 40~50편)을 제작할 수 있는 규모다.

국내 드라마 절반 제작 가능한 규모
헬로비전 합병 앞두고 청사진 제시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강력 반발했다. 콘텐트 투자와 CJ헬로비전·SK브로드밴드의 인수 합병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고, 펀드가 현실화되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쏠림현상으로 생태계가 황폐화할 것이란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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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펀드가 국내 콘텐트 산업 발전과 성장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며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다시보기·재방송 위주의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한편, 역동적인 콘텐트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인기 드라마 시리즈다. 시리즈 전편을 사전 제작하고 한번에 올려 기존 드라마 유통 구조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런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CJ헬로비전과의 합병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가입자(합병시 764만명) 확보가 필수라는 주장이다.

조성될 펀드 3200억원 중 1500억원은 합병 법인이 댄다. 나머지 1700억원은 설명회를 통해 유치하고 오는 7월 중 펀드 운용사를 결정할 예정이다. 1년 뒤엔 투자금 회수와 무관하게 1800억원을 더해 총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5년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투자는 콘텐트, 그리고 관련 기술에 집중된다. 드라마·다큐멘터리 등 영상 콘텐트에 1200억원, 멀티채널네트워크(MCN)·가상현실(VR)과 같은 융복합 콘텐트에 600억원을 각각 투자할 예정이다. 해외 진출을 전제로 한 글로벌 프로젝트에도 600억원이 들어간다. 이밖에 사용자에게 콘텐트를 골라주는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빅데이터 기술 관련 스타트업, VR과 같은 차세대 콘텐트 개발 스타트업에 총 1000억원을 투입한다.

콘텐트 업계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송병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부회장(그룹 에이트 대표)은 “ 넘어야 할 고비도 많지만 한국 드라마가 진일보 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중소제작사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콘텐트에 대한 투자가 인수합병을 전제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 사장은 이와 관련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가입자 수 부족 등으로 투자 효율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난해의 경우 콘텐트 투자가 65억원에 그치는 등 투자 공백이 지속돼 왔다는 주장이다.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의 합병에 반대해 온 경쟁사는 즉각 반발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콘텐트 생태계 활성화와 CJ헬로비전·SK브로드밴드의 인수 합병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이번 계획이 현실화되면 미디어 콘텐트 생태계에서 비정상적인 쏠림 현상을 초래해 생태계가 황폐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별도로 KT는 “CJ헬로비전의 주식을 보유한 KT의 한 직원이 서울남부지법에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 합병 주총 결의를 무효로 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합병 관련해 소송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다. 개인 주주 자격으로 소송을 낸 당사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주주로 CJ헬로비전 주식 가치를 낮게 평가받아 손해를 입었고 ▶인수 합병 승인이 나기 전 SK텔레콤이 주총 의결권을 행사해 방송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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