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도 의식주 해결은 커다란 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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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7면

오랜 기간 신학공부를 했기에 신학과 교수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종교학과에서 일하게 됐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타종교에 대한 연구와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을 높게 인식하신 윗 분의 뜻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기에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몇 해 되지 않아 학부에 개신교 전도사 한 분이 입학했다. 목사가 될 사람이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에 입학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아 다른 학생들보다 관심이 더 갔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서 일반 학생들보다 열 살이나 많았고 결혼해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다양한 인생경험을 한,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몇 해 동안 그와 함께했던 수업과 외부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아직도 제법 되는데, 학부를 졸업한 후 지금껏 아무런 소식이 없어 다소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소속 교수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종교학과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자 해마다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물론 대부분 종교학과 학부 출신에다가 수녀·신부들이었다. 그러다가 개신교 소속인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한 목사 한 분이 지방에 있는 본교 박사과정에 입학하겠다고 찾아왔다. 만나서 대화를 한 결과, 종교 간의 벽을 넘어서 진실과 진리를 찾는 그의 뜻을 이해하게 됐고 고맙게 생각하기까지 됐다.


학기가 거듭되면서 몇몇 목사들이 더 합세했다. 이들의 열린 마음과 진리를 찾는 열정에 감동해 정성을 기울였다. 함께 열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소풍도 가고 그들의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중도에 그만둔 분도 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셋이나 된다.


가장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분은 목회에 매진하는 분으로서 아쉽지만 멀어져갔다. 다른 두 분 중 서강대를 거쳐서 온 분은 학자적인 기질이 강해 부목사로 있던 교회의 일을 그만두고 연구와 저술, 강의에 매진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다른 한 분은 개척교회를 열어 애를 쓰면서도 강한 열정으로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0년 정도 필자 곁에서 공부하는 동안 서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고 정도 들었다. 독신생활을 하는 가톨릭 신부도 의식주를 위한 생활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결코 없기에 수중에 돈이 너무 없을 경우 마음이 초라해질 때도 있다.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심각한 현실 문제다.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독립해 교회를 개척한 제자 목사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안 되는 교우들과 가족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가 만 장이 넘는 선교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권했지만 성과는 미미해 교회로부터 생활비는 아직 꿈도 못 꾸고 쥐꼬리만 한 활동비 몇 푼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학자의 길에 들어선 목사는 필자가 온갖 난관을 이겨내며 마련해 준 강의 몇 개로 겨우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나마 방학에는 받는 것이 없다.


나이 회갑을 지나면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정리해 내 문제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로 여전히 마음의 짐이 한가득이다. 취업과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나라 안팎의 사정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쳐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전헌호 신부hhchun@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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