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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북한 바꿀 골든타임, ‘미·중 제재 공조’ 이끌어 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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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4 면

12일 열린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케리 장관은 왕이 부장에게 “최근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촉구했으며 왕이 부장은 “제재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AP=뉴시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보좌관)

개성공단이 올스톱되면서 남북관계도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시계제로 상태에서 언제든 국지도발이 일어날 수 있는 폭풍전야를 방불케 한다.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수소탄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다시 형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태를 타개해나갈 ‘신의 한 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외교안보전문가인과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전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와 만나 남북한 관계와 동북아 정세를 진단하고 대응책을 들어봤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개성공단은 이제 영구 폐쇄의 길로 간다고 봐야 하나.


윤덕민 국립외교원장=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북한의 폐쇄 조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영구 폐쇄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남북 간 교류협력의 길이 다시 열리고 북한 핵 문제도 풀릴 수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은 재가동될 수 있다고 본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북한의 핵·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선 대내적으로는 통치의 수단이고 대외적으로는 외교의 수단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국가권력이 사유화돼 있다. 사유화된 권력을 정당화하려다 보니까 이번 같은 엄청난 무리수를 둬야 하는데 이것이 북한의 난점이다. 이런 점을 우리가 감안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 바둑에서도 ‘신의 한 수’는 찾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우리 정부가 그 다음 수는 무엇인가를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결국 앞으로 우리가 계속 가동해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관계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라종일=북한의 군사대국화와 선군화는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내부 사정이 어렵다는 표현이다. 경제적인 기반 없이 어떻게 군사대국이 되겠는가. 정권이 아직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폭군의 제일 큰 저주는 친구와 적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면 우리 쪽에서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의 정책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붕괴하면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실패한 국가가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로 갈 수 있도록 우리와 국제사회, 특히 중국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윤덕민=김일성과 공동경영을 한 김정일도 오랜 고난의 행군을 보내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무대에 나섰다. 집권한 지 5년째를 맞는 김정은 정권이 아직 확실한 대남정책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그때 어떤 국면에선 남쪽과 대화를 하긴 했지만 지금 타이밍에선 유일지배체제를 굳혀나가는 것이 제1과제일 것이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풀릴 수 없는 환경에 있고 북한도 그것을 계산하면서 미사일과 핵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7일 광명성 발사 후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1~3차 핵실험을 했을 때보다 제재와 대응 강도가 높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까지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변화가 있었나.


윤덕민=그동안엔 북한 핵이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미국이나 중국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제쳐두고 보수든 진보든 남북관계를 우선시한 게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일본도 각자의 사정으로 방치한 사이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해 왔다. 지금은 북한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느냐 아니면 이걸 막을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내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아파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협상장에 끌어내야 하는데 결국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과 미국의 문제라고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하면 국제사회가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외교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라종일=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북한의 폐쇄 조치는 이미 취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이것들을 긍정적인 조치로 만들어나가느냐가 과제다. 북한은 실패한 나라다. 실패한 나라가 더 큰 위협이 된다. 북한이 붕괴하면 불안정 요인이 된다는 중국의 이해도 우리가 감안해야 한다. 너무 공개적으로 중국을 압박하지 말고 중국과 심층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국지도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윤덕민=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부 결속을 위해서라도 국지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리는 억지력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실효적인 국제 제재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북한을 개혁·개방 체제로 변화시켜야만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같은 시스템에서는 핵 포기를 유도하기 어렵다.


라종일=만약 북한이 궁지에 몰릴 경우 어떤 행동으로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낙관만 할 일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 내부에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이 닥칠 경우에도 안보위협이 될 수 있다.


-‘전략적 인내’를 해온 미국은 이번에 강경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덕민=전략적 인내라는 게 무조건 가만히 있겠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지금 미국 본토를 목표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고 때문에 당연히 미국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선을 넘어서면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할 수 있다고 중국도 얘기한다. 언론은 중국이 어떻게 나오나, 미국이 어떻게 나오나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한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라종일=북한이 저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이 된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을 등한시한 결과로 본다. 미국도 중국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몰라도 그것으로 한반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북한에 대한 이해가 깊은 건 우리 자신이다. 절실한 문제다. 우리가 북한의 사정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번 북한의 도발이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3각공조 공고화의 계기로 작동한다는 시각도 있다.


윤덕민=너무 현상을 단순화해 보는 것 같다. 한·미 동맹은 이미 오래된 메커니즘이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라종일=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를 사이가 좋지 않으면 틀어지는 친구관계처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북한이 핵실험하고 나서 중국이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중 관계가 다 실패했다’고 보면 안 된다. 그동안 쌓아놓은 성과를 최대한도로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하면서 한·중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윤덕민=사드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사드가 만능 시스템은 아니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X밴드 레이더다. 이번에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탐지한 우리 세종대왕함의 이지스 레이더가 오히려 중국을 더 많이 들여다볼 수도 있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우리 내부에선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도입하면 우리 스스로 미국의 세계 전략에 일체화되고 중국과 북한을 자극해 군비 경쟁이 일어난다는 논리가 나왔다. 우리에겐 아직 탄도미사일을 제대로 요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핵우산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것은 모순이다. 중국의 입장에선 우리의 사드 배치에 대한 논쟁을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중국은 계속해서 그 문제를 파고 들어갈 것이다. 사드의 군사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작동한다고 본다.


라종일=중국이 우리 말만 잘 듣는 쪽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드 문제도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은밀하게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라종일=중국도 이미 세계경제의 일원이다. 정치적인 문제를 가지고 경제적인 보복을 한다면 부메랑이 돼 자신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윤덕민=그걸 우리가 자꾸 이야기하면 중국이 실제로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정부의 외교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윤덕민=박근혜 정부는 미국과도 중국과도 최상의 관계를 구축했다. 이번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중 관계는 지난 20년 사이 천지개벽을 했다. 중국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기 전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특별대표까지 보냈다. 중국도 북한에 대해서는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북·중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미국의 압력 속에 마지못해 나선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신중히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중 간 대화 여지가 많다고 본다.


라종일=가슴으로 싸우지 말고 머리로 싸워야 한다. 상대방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잘 살펴 설득해야 한다. 북한도 일사불란한 체제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유일체제를 강조하는 것은 현실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정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찌됐든 중국의 역할이 커 보인다.


윤덕민=유엔 제재 결의안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제재체제를 만드는 데는 한·중, 한·미 등 양자 간에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조용히 중국과 대화하면서 접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란처럼 퇴로를 만들어주는 거다. 필요할 경우 한·미·중 전략대화도 열게 하는 그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도발로 전 국민이 화가 난 국면이다. 아직은 퇴로에 대한 국면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미·중이 참가하는 대북제재 공조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외교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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