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트 없는 한국 개신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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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27면

서양의 교회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강조하고 가르쳐왔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질병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세상의 환난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허용하신 것으로 말함으로써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좋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선(善)을 이루신다고 말을 하지만 그 결과적인 시점이 너무 애매하다 보니,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는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재앙을 주는 하나님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와 같은 신학에 반발하여 발생한 것이 소위 순복음(純福音) 신학이다. 순복음이라고 말하면 국내의 어떤 특정 교파를 생각하기 쉬우나 원래는 미국에서 발생한 부흥운동의 일환이다. 그 근원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믿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병이 걸리면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기 위하여 병을 주셨다고 믿었지만, 순복음 신학이 발생한 후에는 질병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이 병을 고쳐주는 분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엄청난 생각의 변혁을 가져왔다. 소위 ‘좋으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과거엔 하나님을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나님에 대해 여러 수식어를 갖다 붙일 수 있지만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수식어는 주저했는데, 하나님이 인간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렇다면 질병뿐만이 아니라 가난이든, 실패든, 절망이든 모든 인간의 고난에서 건져주시지 않겠느냐고 믿게 된 것이다.


서양에서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자연스러웠고 유익했고 필요했다. 왜냐하면 기존의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은 너무 멀고 엄하고 무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대한민국 개신교의 역사는 짧았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편견이 없었고, 애당초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도의 열정을 가졌기에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부흥회의 전통은 뜨거운 신앙을 장려했다. 이러한 토양에 굳이 순복음 신학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은 불필요했다. 차라리 냉철한 성경공부 위주의 신앙을 도입하는 것이 원래적으로 뜨거운 한국인의 신앙에 균형을 잡도록 도왔을 터이지만, 축복과 병 고침을 강조하는 순복음 신앙은 이미 뜨거워진 신앙을 더 뜨겁게 함으로써 판단력이나 분별력을 상실하게 할 위험이 있었다. 한 술 더 떠서 이미 복을 비는 기복(祈福) 신앙 쪽으로 기울어진 개신교를 더 기복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 모든 일들은 이미 지나간 얘기이다. 필자는 과거의 얘기를 하고 있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기복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철하지도 않다. 신상의 일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거의 20년에 걸쳐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사이에 한국의 개신교는 외형은 유지했을지 모르나 내용을 상실했다. 인프라는 있는데 콘텐트가 없다. 개성을 잃은 듯하다. 자신이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대한민국 사회가 그 동안 민주화를 외치다가 자신감을 잃은 국가가 된 것과 유사하다. 이제는 더 이상 비판하지 말고 다시 세우기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나라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필요하다.


김영준 목사pastorted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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