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라이프] 김서령의 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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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제대로 들으려고, 아니 그보다 뒤뜰에 선 대추나무에서 대추 떨어지는 소리를 본격적으로 들으려고 굳이 지붕을 함석으로 이은 집이 있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렸다. 소설가 남편(박기동.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과 화가 아내(문영순)와 사진을 전공하는 딸이 산다는 집.

나는 당장 그 집을 향해 달렸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송정리. 이름대로 소나무가 많은 해안마을,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한 지 30분쯤 지나자 공기의 냄새부터 달라졌고 집은 오래된 적송이 드문드문 선 솔밭 아래 하얗게 서 있었다.

길쭉한 큐브. 이렇게 단순할 수 있을까. 아무 장식도 굴곡도 없는 반듯한 네모상자. 상자는 땅에 고정되지 않고 슬쩍 들어 올려져 있다. 우리 옛 건축의 '들어올림' 기법을 차용했다 한다. 설계는 안주인의 연세대 후배인 예조건축사사무소(02-597-7633)의 주영정씨가 맡았다.

네모상자 뒤쪽은 복도이고 앞쪽은 좁고 길게 툇마루(적삼목 소재의 테크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가 깔리고 그 가운데로 옛 초등학교 교실처럼 방들이 수평으로 늘어놓였다.

방마다 창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막힘없이 열려 있다. 그래서 전원풍경이 실내로 무진장하게 '침투'해 들어온다. 당호는 솔잎이 마당 가득 날아든다 해서 '솔마당집'.

솔마당집은 살림집 뒤에 나직하게 기역자로 엎드린 옛 한옥이다. 눈썰미가 빼어난 박교수 부부는 옛집의 미덕을 최대한 살려냈다. 천장의 반자를 뜯어내자 놀랍게 아름다운 서까래가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휘어진 음전한 대들보도 드러났다.

6천5백만원에 사들인 19평짜리 낡은 시골집(2000년 12월, 마당 포함해 대지 2백70평)은 기둥을 보강하고 앞뒤로 유리창을 달고 바닥에 마루를 깔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한 공간으로 터진 실내는 지금은 안주인의 그림과 도자기를 전시하는 세련된 갤러리로 사용 중. 대신 방 하나는 황토벽을 바르고 구들을 놓아 군불 때는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앉아서 팔 걸치기 좋을 만한 위치에 낮은 창도 뚫었다. 헌집 수리에 5천만원, 새집 건축에 평당 4백만원(살림집 40평, 부속화실 20평)씩 총 2억원이 들었고 지붕은 소문대로 낙과(落果)소리를 생생히 들으려고 함석에 동을 입혔다.

요즘 쌔고쌘 전원주택의 한 전범이 될 만하다. 옛집과 현대건축의 조화로운 상생. 거기 송홧가루와 솔잎이 가득 날아들 때 이 집 개 '솔이'는 리듬을 맞춰 짖고 지붕엔 풋대추가 우주음이듯 심각하게 툭 떨어진다.

김서령 생활 칼럼니스트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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