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해도 꿈 이룰 수 있는 세상 꿈꿉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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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윤혁진씨가 김해외고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윤혁진]

“장애가 곧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습니다. 장애인도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서울대 합격한 1급 장애 윤혁진씨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하지마비
경제학 전공 후 복지 분야 일하며
장애인에 기회 주는 정책 만들 것

다음달에 서울대에 입학하는 김해외고 3학년 윤혁진(20)씨의 말이다. 1급 장애(하반신 마비)를 갖고 있는 그는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정시모집)을 통해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했다.

윤씨에게 공부는 ‘육체노동’이었다. 다섯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줄곧 휠체어에 의존해왔다. 학교 생활은 끊임없는 도전의 여정이었다. 체험학습 같은 행사는 물론 일상적인 학습에서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윤씨는 “부모님이나 친구 도움 없이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거나 책가방을 들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중학교 무렵부턴 척추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휘어지는 척추측만증도 앓게 됐다. 2009년 수술을 받고 학교를 1년간 쉬기도 했다.

하지만 윤씨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하루 다섯 시간을 자고 남은 시간은 책과 씨름을 했다. 어머니 김소양(60)씨는 “무서울 정도로 몰두했다. 저러다 몸이 상해 쓰러지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윤씨가 공부에 매달린 것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빈곤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장애인에게도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도록 복지 정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장애인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재활 치료를 받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방학마다 다른 학생들에게 공부법을 가르쳐주고 진로 상담도 해줘왔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려고 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대학 졸업 뒤 공무원이 돼 복지 정책 관련 일을 해 본 뒤 그 경험을 토대로 경제학자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칼 폴라니(‘탈시장경제’를 주장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학자)처럼 사회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번에 특별전형 과정을 거치며 저보다 더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비장애인 못지 않은 당찬 포부를 가진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의 꿈이 이뤄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공다훈 기자 kong.da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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