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놓쳤지만 ‘최고아빠상’ 받은 최경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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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1타 차로 우승을 놓쳤지만 가족들이 만들어준 ‘최고 아빠(BEST DAD) 트로피’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최경주. 왼쪽부터 작은아들 강준, 큰아들 호준, 최경주, 딸 신영, 부인 김현정 씨. 최근 리우올림픽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최경주는 “기왕이면 선수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페이스북 최경주 공식 팬 페이지]

“얘들아, 미안하다.”

PGA 파머스 오픈 1타 차 준우승
19개월 만에 톱10, 오랜 부진 날려
가족들 트로피 만들어 깜짝 선물

“아빠, 괜찮아요.”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 골프장 남코스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최종 라운드.

합계 5언더파 단독 2위로 경기를 마친 ‘탱크’ 최경주(46·SK텔레콤)는 시상식을 마친 뒤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향했다. 브랜트 스니데커(36·미국)에게 1타 뒤져 준우승을 한 아쉬움도 잠시. 아내 김현정(45)씨와 아들 호준(19), 강준(13), 딸 신영(15)이 깜짝 선물로 준비한 ‘최고 아빠(Best Dad)’ 트로피를 건네받은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비록 우승 트로피를 놓쳤지만 가족의 사랑이 담긴 트로피를 받아든 그는 우승자 스니데커보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최경주는 “누구도 받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상”이라며 기뻐했다.

최경주는 2000년 PGA투어에 데뷔한 이래 지난 해 가장 부진했다. 19개 대회에 출전해 톱 10에 한 번도 들지 못했고, 5번이나 컷 탈락을 당했다. 상금 순위는 161위(48만8864달러)로 곤두박질쳤다.

2011년 5월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통산 8승을 거둔 뒤 4년이 넘도록 우승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탱크도 흐르는 세월은 막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경주는 그대로 멈춰서지 않았다. 최경주는 지난 해 말부터 3주 간 중국 광저우 그랜드레이크 골프장에서 샷을 가다듬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아들 뻘인 최경주재단 유망주들과 함께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훈련을 했다.

최경주는 “한국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 부단장으로 참가하면서 ‘나도 필드에서 플레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8월 리우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뽑히려면 우승이 필요하기에 더욱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했다.

3라운드까지 9언더파 공동 선두였던 최경주는 전날 악천후로 경기가 중단되기 전까지 10개 홀에서 3타를 까먹었다. 이날 재개된 4라운드 잔여 경기에서는 최대 시속 72㎞의 강풍이 불었지만 8개홀에서 1타만 잃는 선전을 펼쳤다. 나무가 뿌리채 뽑힐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자 주최측이 갤러리의 출입을 금지했을 정도였다.

2014년 6월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공동 2위에 오른 이후 1년 7개월 만에 톱10에 입상한 최경주는 70만2000달러(약 8억4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최경주의 세계랭킹은 지난 주 334위에서 무려 197계단이나 상승한 137위가 됐다. 한국 선수로는 안병훈(27위)-김경태(66위)-송영한(113위)에 이어 네 번째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태극마크도 실현 가능한 꿈이 됐다.

최경주는 “마흔 살이 넘으면 나이가 들고 거리도 나지 않아 좌절하기 쉽다. 그러나 내 샷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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