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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사실로 인정하면 해결책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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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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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셀러스
미 항공우주국 연구원

나는 기후학자다. 얼마 전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기후변화 연구로 보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숨지기 전 기후변화의 핵심 이슈인 지구온난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그 해결책도 뒤이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환갑인 내가 몇 년이나 더 살지 불투명해진 지금,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해야 했다. 과연 이 금쪽같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바칠 만큼 기후변화 연구는 가치가 있을까?

 나는 암 진단을 받자마자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은행 계좌를 정리했다. 휴일엔 파티도 열었다. 이어 부엌 테이블에 앉아 ‘죽기 전 꼭 할 일’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한데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거나 카리브해 해변을 찾는 건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뒤 가능한 한 빨리 직장으로 복귀하고 싶었다.

 나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우리가 지구 기온을 관측한 이래 지난해는 가장 더운 해로 나타났다. 기후변화가 분명히 진행 중이며, 이런 식으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인류에 대단히 힘든 상황이 일어날 것이란 증거가 확보됐다. 각국 정상들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지난해 파리에서 기후회의를 열고 전 세계 평균기온을 산업혁명 이전 수준에서 섭씨 2도 안쪽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합의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과학적 증거와 컴퓨터의 예측 범위 내에서 최대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한 건 평가해 줘야 한다.

 만일 지구의 기온이 섭씨 2도를 넘게 상승한다면 강우량과 온도 변화 패턴이 크게 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수자원과 식량 생산이 급감하고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다. 인류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재난이 발생할 우려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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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70억 명 선인 세계 인구가 95억 명으로 증가할 2050년에는 기후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이다. 이들은 선진공업국들의 무분별한 탄소가스 배출의 희생자다. 프랑스혁명은 빈곤층이 대부분인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향락에 탐닉한 왕과 귀족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터졌다. 지구 온도가 높아질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구촌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이 극대화되며 극단주의와 폭력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동안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2015년은 그런 주장에 마침표가 찍힌 해로 기록될 것이다. 과학적 증거들이 축적되면서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믿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의 70%가 “기후변화는 사실”이라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나서야 한다. 먼 훗날 본격화될 온난화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소가스 배출을 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처한 상황에 몰린 정치인들을 구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국경을 초월해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엔지니어, 기업인들이다. 이들은 향후 수십 년 안에 탄소에너지를 대체할 청정에너지를 개발해야 할 임무를 지고 있다. 원자력과 태양에너지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휘발유 대신 전기로 가는 차량을 보편화하는 방안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투자만 제대로 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들이다. 미국 과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새로운 성과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당시 수준으로는 수십 년 걸렸을 기술혁신을 단기간에 달성했다. 그 결과 1945년은 30년대 후반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우리는 다가오는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지구의 기후가 변할 것이고, 에너지 수급 방식도 변할 것이다. 우리는 침착하게 이런 변화를 흡수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처럼 대처하기 힘든 변화도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변화는 위기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신기술들이 삶의 질을 개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신중히 관리해 간다면 미래가 현재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인류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고 더욱 큰 발전을 이룬 사례가 많다. 이런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은 위기를 인정하면서 침착하게 대응한 현실주의자가 많다. 반면에 위기의 존재를 부인하고 변화를 거부한 사람들은 패배자로 전락했다.

 나는 암에 걸렸지만 삶에 불만이 없다. 우주비행사가 돼 지표면에서 수백㎞ 떨어진 우주 상공에서 30㎞ 넘게 유영을 한 적이 있다. 허리케인이 바다 위에서 이동하는 모습도, 아마존강이 열대우림 사이를 흐르는 모습도 봤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얼마나 섬세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절감했다. 나는 지구의 미래에 희망을 품고 있다. 결정했다. 나는 내일 일하러 갈 것이다.

피어스 셀러스 미 항공우주국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