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유전투자 의혹' 수사 가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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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유전 개발 투자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수사관들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철도교통진흥재단에서 서류철 등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대전 철도공사 등 12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최승식 기자

*** 사례비 명목 120억 행방 추적

검찰이 18일 하이앤드 대표 전대월씨의 자택 등 12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러 유전투자 의혹 수사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검찰은 압수수색한 자료를 분석해 철도청이 무리하게 유전 사업에 뛰어든 배경과 함께 이 과정에서 오간 돈의 향방을 쫓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 주식 매각대금 120억원 행방=지난해 7월 말 전대월씨가 "유전 인수 사업을 추진하는 대가로 사례비 120억원을 달라"고 요구하자 철도청은 전액을 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왕영용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은 "당시 신광순 철도청 차장, 김세호 청장에게 구두 보고해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철도청이 전씨에게 충분한 검토 없이 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을 중시하고 그 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왕 본부장은 이 사례비를 지급하기 위해 철도재단 신광순 이사장의 위임장을 위조해 전대월씨와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의 주식 12만 주를 액면가의 20배인 120억원에 매수하기로 계약했다.

한편 지난해 9월 철도교통진흥재단에 코리아크루드오일(KCO)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전씨가 받은 채권 84억원은 모두 채무 변제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채권 양도 계약서에 따르면 전씨는 주식 대금 30억원과 54억원을 각각 김모.황모씨에게 넘기기로 합의했다.

채권 양도 계약이 이뤄진 날짜는 전씨가 KCO의 지분을 철도재단에 넘기기로 한 2004년 9월 16일이었다.

전씨에게 30억원어치 채권을 넘겨받은 김모씨는 "2003년 춘천 한일아파트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씨에게 빌려줬던 20억원에 대한 원리금을 채권으로 돌려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철도재단과 러시아 측의 계약이 파기되면서 김씨는 채권을 현금화하지 못했다.

◆ "철도청, KCO 설립 때 지분 투자 안 해"=KCO의 자본금 10억원 전액을 전대월씨가 납입한 뒤 법인 설립 하루 만에 빼냈다.

철도재단은 돈 한푼 내지 않고 35%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 뒤 철도청은 전대월씨의 지분을 매입할 때 철도재단이 갖고 있던 지분과 전씨의 지분(42%)을 합쳐 77%로 계산해 84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철도재단이 어떤 연유로 지분을 갖고 있었는지, 이면계약이 있었는지 등이 의문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KCO 설립 당시 전씨가 주주 대금 10억원을 모두 냈으나 철도재단 지분 35%에 해당하는 3억5000만원은 철도청이 추후 상환키로 구두 약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재식.임장혁 기자 <angelha@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허문석 KCO 대표 "나는 들러리였다"

허문석(71.사진)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는 18일 "(전대월씨가 60억원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는 등의 주장으로)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주동자로 몰리고 있다"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들러리였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오일 게이트가 불거지자 지난 4일 인도네시아로 떠나 현지에 머물고 있다. 허씨는 이날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업을 도와주고 KCO의 주식 5%를 공로주로 받은 것 이외에 전씨에게서 돈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면서 "공로주 5%마저도 전씨 등의 KCO 지분 60%가 철도청으로 넘어가면서 0.1%로 줄어 전씨와 철도청 측에 항의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개발 사업 계약을 하기에 앞선 러시아 현지 실사에서도 자신은 배제됐고 KCO 대표가 된 이후 사무실이나 직원도 배정받지 못했다"며 "사업 추진은 철도청에서 주도적으로 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개입 의혹과 관련, 그는 "고교 동창인 이기명(노무현 대통령 전 후원회장)씨에게서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소개받고, 이 의원에게서 전대월씨를 소개받은 것이 전부"라고 일축했다.

왕영용 철도공사 본부장과는 2002년 인도네시아 철광석 채굴사업을 부동산개발업자 전모씨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검찰 조사에 응할 뜻도 비쳤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조사를 받는 것도 괜찮고, 필요하다면 한국에 들어갈 의향도 있다. 다만 결백한 사람이 억울하게 소환되는 만큼 부당한 처벌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손해용 기자 <hysoh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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