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8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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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문경에게서도 소식이 없고 몸은 아프고 하여 금련은 마음이 침울해져서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웃 사람들은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여 금련이 울고 있는 것으로만 여겼다.

그 무렵, 서문경은 기생으로 있다가 첩이 된 탁이저의 병이 깊어지자 그녀의 죽음을 대비하여 장례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서문경이 침상에 누워 있는 무대 귀신을 보고 온 날로부터 탁이저의 병이 갑자기 더 심해졌다. 서문경은 무대 귀신이 평소에도 병을 달고 사는 탁이저의 몸에 붙었다고 생각하여 무당을 불러 굿을 해보기도 하였으나 아무 차도가 없었다.

결국 탁이저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서문경은 탁이저를 죽인 무대 귀신이 자기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을 돌아가면서 잡아채가면 어쩌나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가 금련의 집에서 본 것은 무대 귀신이 아니라 헛것에 불과하다고 자위하면서, 탁이저도 무대 귀신이 해코지하여 빨리 죽은 것이 아니라 원래 병약하여 세상을 뜬 것이라 여기려고 애를 썼다.

또한 무대 귀신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금련의 집을 찾아가서 금련을 안아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하였다. 자기가 본 것이 정말 무대 귀신인지 확인을 해보고도 싶었다.

그런 중에 단오절이 다가왔다. 수양버들이 가지를 휘영청 늘어뜨리고 석류는 수줍은 색시의 볼처럼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따스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들판에는 새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술잔을 돌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금련은 단오절인데도 상중인 데다 기력이 없어 바깥으로 나가보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쓸쓸히 단오절을 맞이하고 있는 금련에게 어머니 반씨가 찾아왔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고생고생 하며 삯바느질로 금련을 키운 어머니였다.

"에고, 너도 이 에미처럼 남편 복이 없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반씨가 간신히 일어나 앉은 금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염려 마세요. 궁하면 통한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할 때 내가 왕초선네로 가게 되어 한시름 놓게 되고, 왕초선이 죽었을 때도 장대호 어른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주었고, 장대호 어른이 자기가 죽기 전에 하인에게 나를 맡겨놓아 살게 했고…. 이제 남편이 죽었지만 또 살길이 열리겠지요."

"그렇게만 되면 좋으련만 세상 일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번에는 딸까지 딸렸으니 좋은 남자 만나기도 쉽지 않고."

반씨가 가만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금련이 몸이 아픈데도 영아의 도움을 받아 억지로 일어나 어머니를 대접해주려고 술과 음식을 내어왔다. 금련도 어머니와 마주 앉아 오랜만에 술을 조금 마셔 보았다. 그러자 그동안 술을 마시지 못해 몸져 누워 있었던 듯 전신에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원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 어느 때보다 서문경이 몹시 그리워졌다. 어머니가 좋은 남자 운운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때 왕노파가 조심스럽게 금련의 집으로 건너와 그녀를 찾았다.

"웬일이세요?"

금련이 묻자 왕노파는 한쪽 눈을 끔벅거리기만 했다. 그런 왕노파의 눈동작을 보는 순간, 금련은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서문대인이 찻집에 와 있구나.'

"어, 손님이 와 계시네. 실례가 되지 않을지."

왕노파가 엉뚱한 말로 시치미를 떼며 술과 안주가 놓인 탁자 의자에 끼여 앉았다.

"어머님, 전에 말씀드린 찻집 할머님이 바로 이분이에요. 나에게 어머니 같은 분이죠."

왕노파가 또 눈을 끔벅거려 금련에게 신호를 보내고 반씨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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