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법률시장 개방 계속 미룬다고 해결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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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가 어제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을 방문해 법무부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항의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미국과 영국·호주·유럽연합(EU) 대사들은 서한에 서명하면서 “법 개정안은 외국 로펌들에 법률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외국법 자문 법률사무소협회의 입장을 고려해달라”며 협회의 서한까지 함께 제출했다. 외국법 협회는 한국에 법률사무소를 세운 20여 개 외국 로펌들로 구성돼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대사들이 우리의 주권까지 침해를 해가며 법률회사를 위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비난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외교사절들의 국회 방문을 비판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개정안 내용은 국내 법무법인과 합작을 하는 외국 로펌의 지분율과 의결권은 최대 49%로 제한하면서 경영상 무한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로펌의 업무 경력을 3년 이상으로 한 것과 합작 로펌의 파트너급 외국인 변호사의 수가 한국 파트너의 수보다 많을 수 없도록 한 것도 외국 로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법무부 측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합작법인의 조건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대사들은 “법무부안은 법률시장을 완전 개방키로 한 FTA 규정과 정신에 위배된다”고 반발했다. 결국 국회 법사위는 개정안 상정을 무기한 보류키로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FTA의 근본 취지를 고려할 때 점진적 법률시장 개방 정책은 한시적이고 ‘땜방’식 처방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관예우와 혈연과 지연에 얽힌 우리의 법조계 문화를 고려할 때 과감하고 혁신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내 대형로펌들도 연 매출액 기준 2조5000억원 안팎에 불과한 우리 시장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생각으로 법률 선진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 거대 로펌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국내 로펌들의 환골탈태를 기대한다. 논의의 출발점이 법률소비자인 국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