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大選가도에 '미국판 盧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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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하워드 딘(54.사진) 전 버몬트 주지사가 '인터넷'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딘 전 주지사는 지난달 27일 민주당의 후원조직인 '무브온(MoveOn.org)'에서 실시한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9명에 대한 인터넷 선거에서 43.87%를 얻어 수위를 차지했다. 2위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표다.

무브온의 온라인 투표는 공식 예비선거가 아니다. 그러나 네티즌 31만7천여명이 참여했고 민주당 대권 주자에 대한 첫 평가였다. 미 정계와 언론은 무명에 가까웠던 딘 후보의 부상을 비상한 관심 속에 바라보고 있다. 딘 전 주지사는 버몬트 주지사가 정치경력의 전부로 중앙 정계와는 거의 인연이 없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존 케리 상원의원이나 몇차례 대선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리처드 게파트 전 하원 원내총무와는 경력이나 지명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그는 지난 6개월간 미국내 네티즌들을 상대로 상업 웹사이트인 '미트업닷컴(meetup.com)'에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지명도를 넓혀갔다. 이번 사이버 예비선거의 결과는 그 같은 노력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미트업닷컴의 동호인 모임엔 회원이 12만8천여명이며 이들은 자발적으로 미국 전역에서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열었다.

딘 후보를 지지하는 골수 지지세력인 '딘사모'가 만들어진 것이다. 딘은 동시에 지방을 순회하며 지지회원들과 만나 토론하고, 그들 집에서 기거하며 인간적인 유대를 쌓아갔다.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이 의회 활동과 TV출연에 주력하던 사이 그는 올 들어 아이오와주는 16번, 뉴햄프셔는 20번,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다섯번을 찾았다.

딘 전 주지사는 급진적인 선거구호와 직설적인 발언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 내 민주당'을 대표하겠다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보수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의회가 압도적으로 이라크전을 승인했을 때는 '전쟁 반대'를 주장했다.

최근 한 방송에서는 "(전쟁으로)이라크 국민이 살기가 좋아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경우도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소리 높여 비판했다.

다른 모임에선 "민주당이 대통령의 전횡을 돕고 있다"며 자기 당 지도부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다른 나라,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의 부상에 대해 그동안 부시 행정부에 끌려다니던 '연약한' 민주당 지도부에 만족하지 못하는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이 그에게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정치실험과 구호는 비판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룬츠는 "그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소수(screaming minority)를 대표한다"고 평가절하했다. 같은 민주당인 존 케리 의원까지 "군통수권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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