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부시 입맛 맞추려 정보 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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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중앙정보국(CIA)이 정보를 왜곡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의회 조사가 벌어지는 등 논란이 한창이다. CIA가 이라크 공격을 열망한 부시 대통령의 입맛에 맞추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이 테일러는 이와 관련, 지난달 29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문을 싣고 '권력과 유착한 조지 테닛 CIA 국장'을 맹비난했다. 테일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 때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분석관(부차관보)을 지냈다.

테닛은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테닛을 유임시키라는 아버지 부시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테닛은 대통령에 대한 일일보고를 통해 부시의 신임을 얻어갔다. 9.11사건 이후엔 테러 징후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회 등에서 사임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를 감쌌다. 9.11테러에 자극받은 부시는 CIA의 전 세계적 정보활동을 강화하도록 허락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CIA의 비밀공작을 인정했다. 테닛은 부시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테일러 전 차관보는 바로 이런 유착관계를 거론했다. 그는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에게 수시로 직접 보고를 하면서 테닛이 역대 CIA 국장 중 가장 실세로 떠올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CIA 국장이 대통령이나 그의 정치팀과 너무 가까운 관계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테일러는 정보기관의 왜곡을 막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CIA 국장이 취임 전 의회에서 '모든 정보의 분석과 결정을 특정 정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한다'고 선서하라는 것이다. 또 균형과 견제를 위해 국장이 아니라 CIA의 다른 고위 간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테일러는 과거의 'CIA 전횡'사례도 제시했다. 1984년에 열린 아시아 국가 전략 대책회의 때 CIA가 국무부 및 다른 기관들과 상충되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논란 끝에 "(대통령에게 보낼 보고서는)국무부를 포함한 대다수의 의견을 중심으로 하고 CIA 주장은 소수 의견으로 정리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테일러가 포토맥강을 건너는 동안 CIA에서 "우리 분석을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 주장을 참고로 붙이는 보고서를 만들겠다"는 연락이 왔다. 정보해석의 최종 권한을 가진 CIA가 힘을 행사한 것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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