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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간다고 전해라~” 백세인생 … 대북 확성기 타고 북한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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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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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낮 12시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에 가수 이애란씨의 ‘백세인생’이 포함됐다. 심리전의 일환이다. 트로트 리듬의 이 노래는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아직은 ○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는 문구를 반복한다. 확성기를 통한 청각 심리전에서 이런 반복성은 효과를 증폭시킨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심리전의 핵심 전략은 반복을 통해 상대방의 비자발적 중독을 의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노래는 후렴구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도 반복한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 말했다.

최고 존엄 비판은 차분한 어조로

 최신 유행 가요를 대북 확성기로 방송하는 것은 연성 콘텐트로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군은 빅뱅의 ‘뱅뱅뱅’과 걸그룹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에이핑크의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등도 선곡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등은 심야 시간대에 틀어 정서적 자극을 최대화하겠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8일부터 북한 군인들은 심야에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는 너에게로 다가가고 싶은데/미래는 알 수가 없잖아/이제는 용기 내서 고백할게요/하나보단 둘이서 서로를 느껴봐요”라는 ‘오늘부터 우리는’의 가사를 듣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체제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최신 유행 가요 등 다양한 콘텐트로 편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확성기 방송에는 ▶뉴스 ▶남측의 발전상 ▶북한의 실상 ▶남북 동질성 회복 ▶북한 체제 비판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일기예보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방송해 청취 집중도를 높일 것이라고 국방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과거 대북 확성기 방송에선 “인민군 여러분, 오후에 비가 옵니다”는 방송 내용이 나간 후 실제로 빨래를 걷는 북한 군인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이 ‘최고 존엄’이라 지칭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비판 내용도 들어간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과 인권 실태 등을 고발하는 뉴스·시사 프로그램으로 김 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런 비판은 사실에 근거한 차분한 기조로 방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사실에 기초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인신공격 등) 유치한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후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에선 김 위원장이 집권한 뒤 한 번도 외국 방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대 곽 교수는 “청각을 통한 확성기 방송은 북한 주민에게 ‘잠재적 기억’을 만들어 북한 체제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주입받은 ‘명시적 기억’을 교란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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