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이란핵 안보리 회부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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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란 나탄즈 지역의 핵 시설을 보여주는 위성사진

이란이 핵시설 봉인을 제거하고 핵연료 연구활동을 재개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10일 "영국.프랑스.독일 등 EU 3개국과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며 "이란이 현 태도를 고수할 경우 안보리의 제재 방안을 논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란을 제재하는 방안을 포함해 어떤 선택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이란과 이라크는 다르다'고 한 만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비상회의 소집을 요청할 수도 있다"며"IAEA에선 안보리 회부에 필요한 결의안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이 정리되면서 EU도 움직이고 있다. 이란과 핵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프랑스.독일은 12일 베를린에서 긴급 외무장관 회동을 하고 이란의 안보리 회부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란의 입장은 확고하다. 모하마드 사에디 이란 원자력에너지기구 부대표는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의 핵시설 재가동은 핵무기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 활동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1일에는 이란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도 "서방 지도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핵연료 연구와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며 "주권적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일 기자

[뉴스 분석] 이란 '벼랑 끝' 핵 외교로
국내 권력기반 강화 노려

이란의 벼랑 끝 핵 외교는 강경파 신정부의 계산된 전략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서방과의 갈등을 고조시킴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첫 번째 토끼는 국내 정치에서의 온건파 제거.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후 권력기반 강화를 계속 추진해 왔다. 취약한 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온건파들을 눌러야 한다. 서민들에게 석유 판매 이익을 나눠준다는 공약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반발도 약화시켜야 한다. 취임 직후 온건파 외교관 및 정부 관료 숙청을 단행한 것도 이런 필요에서다. 이런 강경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외부적 위기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핵 주권이란 자존심도 세우면서 국제적 비난을 자초함으로써 국내 지지여론을 강화할 수 있다. 이집트의 알아람 전략연구소의 술탄 무하마드 박사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아직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가운데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까지 쓰러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토끼는 시아파의 중동권 패권 장악이다. 시아파 이란은 이라크에 새로운 시아파 주권정부가 들어서는 데 상당히 고무돼 있다. 이라크를 넘어 인근 바레인.쿠웨이트.오만, 그리고 서쪽으로 시리아.레바논을 걸치는 시아파 블록을 구축하는 것이 이란의 장기 전략이다. 시아파 국제연대가 완성되면 서방의 압력도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가서 핵에너지 기술을 무기 제조에 동원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아마디네자드의 전략은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 걸프지역 수니파 아랍권은 이란의 행보에 두려워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비난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란 내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온건파의 비난은 있지만 목소리는 크지 않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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