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국·일본 갈등 이렇게 본다

위기 풀 특효약은 양국 정상 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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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외교가 위기에 서 있다. 북한과는 납치 문제로, 러시아와는 북방 영토 문제로, 한국과는 독도.교과서 문제로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미국까지 아난 사무총장의 개혁구상에 반대를 표명했다.

일본 외교에 한층 심각한 사건은 중국의 반일 시위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각지에서 일본 상임이사국 진출과 교과서 문제에 반대하는 데모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에 몰려가 돌과 페트병을 던져 대사관 공용차와 일본 기업 광고판을 부쉈다. 반일 행동은 지난해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도 나타났지만, 그때는 축구경기였고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명확한 반일 구호 아래 시작된 시위다.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와 교과서 비판에서 더 나아가 일본 제품 불매가 시위의 중심 슬로건이 되었다. 중국의 일본 유학생과 기업주재원들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현 단계에서 일본은 먼저 중국의 폭력과 파괴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반면 중국 측은 모든 책임이 일본에 있다고 맞서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다.

1999년 비슷한 시위가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에서 일어났다. 코소보 분쟁 당시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이 미군 전투기에 오폭 당해 희생자가 생겨났다. 격분한 중국 학생들은 베이징 미국대사관 앞에서 격렬한 투석시위를 벌였다.

미.중 양국은 보상 문제로 옥신각신했지만 미국이 먼저 중국 희생자들을 보상한 데 이어 중국도 미국대사관의 파괴를 보상해 타결을 보았다. 미.중 간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지만 감정에 빠지지 않고 대국적 관점에서 문제를 푸는 전략적 관계가 깔려 있다.

이번 시위는 중국 당국이 묵인했다고 한다. 정부가 폭력 행위를 적극 저지하지 않았으며 데모가 끝난 뒤 시위대는 당국이 마련한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시위를 진압할 경우 제기될 '일본에 약한 정권'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그렇다고 마음대로 시위를 허용하면 폭도화 가능성의 딜레마 때문에 모호한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대학생 절반이 취직을 못하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 반일 운동이 이런 다른 문제와 연동될 위험성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언론의 일본 관련 보도를 극력 제한해 연쇄 반응을 억누르고 있다.

현재 일.중 관계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얽혀 미로에 빠져버린 형국이다. 일본에선 '폭력적인 중국'이란 이미지가 퍼지고 중국에선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이미지가 깊어졌다. 예전에는 양국 간에 다양한 인적 채널이 존재해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지금은 세대교체로 이런 네트워크가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중국은 일본의 최대 교역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누구도 일.중 관계 개선의 긴급성을 인식하면서도 행동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결국 공식적인 외교채널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중 관계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초점이 된 듯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돼도 상호 불신감은 간단히 사라질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특효약은 정상들 간의 교류밖에 없다.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이 어렵다면 제3국에서 회담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일 관계 역시 심각한 풍파를 맞았지만 양국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일.중 관계 역시 위기의 와중에서도 이런 이성적 대응이 바람직하다.

고쿠분 료세이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