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자유·사랑·힘 중 뭐에 제일 끌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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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서로 욕구가 다름을 인정하라

사랑을 받기도 주기도 힘들다는 사람들

Q (다가오는 사람이 겁나요) 싫지 않은 사람인데도 저에게 관심을 갖고 잘해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불편하니까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데 저 자신도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대인기피까지는 아닌 것 같고, 실제로도 인간관계는 나쁘지 않아요. 원래 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고 웬만한 일은 혼자 해결하는 성격이긴 한데, 그걸 감안해도 누군가의 관심을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원인이 뭘까 생각은 많으나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A (사랑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윤 교수)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건 최상의 경험이면서 동시에 불편함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받은 만큼 나도 해주어야 하는 책임감이 생기고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내 자유로움을 희생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친밀감이 주는 기쁨이 커지지만 그만큼 다른 불편함도 증가하게 되죠. 불편함이 친밀감이 주는 기쁨보다 커지면 관계는 삐걱거리고 헤어지게 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다시는 누굴 만나지 말아야지’ 마음먹지만 외로움에 다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죠.

독특하게 타인과의 관계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성격 유형이 있습니다. 일도 사람이 없는 야간 업무나 혼자 하는 업무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오늘 사연의 주인공은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성격이라면 불편함이 없어 고민할 일도 없죠. 혼자 있기 좋아하는 특이한 성격이라기보다는 사랑보다 자유에 대한 욕구가 더 중요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인간관계가 원활하지만 상대방이 지나치게 친밀감을 표현하면 내 자유로움을 침범할까 움츠러들게 되는 거죠. 사랑이냐 자유냐는 성향의 문제이기에 정답은 없습니다만 오늘 사연처럼 고민이 된다면 지나치게 사랑이란 감정을 억압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고 친밀감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겠습니다.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연습하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행동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며 거꾸로 마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자유, 사랑, 힘 중 제일 끌리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 같은 생각일 듯싶지만 의외로 나오는 대답이 다 다릅니다. 부부가 각기 다른 사업을 하는 CEO 부부를 만났을 때 이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부인은 단번에 힘이라고 하더군요. 왜냐고 물으니 ‘힘이 있으면 사랑도 자유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에 반해 남편은 자유를 선택하더군요. ‘회사 분위기가 엄청 좋겠어요’라 말하니 끄덕이며 직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은 부인이 더 잘 버시죠’라 짓궂게 물으니 웃으며 ‘그렇다’고 하더군요.

힘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인은 영업 능력이나 업무 추진 능력이 대단합니다. 자신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직원들을 강하게 몰아세우죠. 회사에 가보면 직원들의 군기가 셉니다. 이 사람은 개인적인 삶보단 조직의 가치가 먼저입니다. 그에 비해 남편은 나의 자유가 소중하기에 남의 자유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회사 분위기가 느슨할 수밖에 없죠. 직원들 입장에서 편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일부 직원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고 이런 분위기에서 대박을 터트리는 창조적인 아이디어 작업이 더 활성화할 수도 있습니다. 힘이나 자유가 아닌 사랑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의 인정과 관심이 우선입니다. 회사 일이 힘들어도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주면 힘내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이 좋아도 관심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힘들어합니다.

이렇게 마음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내 안에서도 층층이 뒤섞여 있기에 나와 타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02 난 왜 그럴까 자책하지 마세요

Q (친해질수록 자꾸 집착해요)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면 그걸 숨겨야 하는데 대놓고 집착하고 표현해서 서로 힘들게 만들어요. 예를 들면 제가 싫어하는 사람과 제 지인이 그냥 업무상의 대화를 해도 왜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농담 섞인 대화를 하느냐며 지인에게 화를 내요. 과거 학창시절에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줘서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믿었는데 결국 그 사람이 목적을 갖고 저를 이용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정말 큰 상처가 되었어요. 이후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계속 끊임없이 사람을 믿지 못해 집착하고 의심해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저도 힘듭니다.

A (당신 탓이 아니라는 윤 교수) 첫 사연은 다가오는 사랑에 거부감이 드는 경우였는데 둘째 사연은 반대로 사랑이 빠져나갈까 걱정하고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건 사람들이 이렇게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해 호감이 있고 사랑을 한다고 해서 내 성격이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나에게 맞추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는 슬프게도 이루기 어려운 요구입니다. 사랑해서 가까워지고 기대도 늘어나는데 서로의 성향이 바뀌지 않으니 갈등인 부분이 더 크게 폭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죠.

 관계 갈등을 겪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면 외롭습니다. 특별한 성격이 아니라면 우리는 외로움이 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려고 욕망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관계 갈등을 최소화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첫 단계는 나를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집착하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나는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한 사람이군’하며 그걸 내가 가진 하나의 특성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성격에 중간이라는 것은 잘 없습니다. 우린 다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잘 맞는 상대를 찾는 것입니다.

 행복과학이 말하는 행복 요인 1위는 무엇일까요. 경제적 성공, 사회적 지위가 아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가’라고 합니다. 1등 요인의 내용이 너무 소탈하고 간단해 연구 결과가 맞는지 의심마저 듭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조건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한테나 내 마음을 마구 털어놓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진심으로 내 마음을 공감해주고 함께 내 고통을 느껴주는 사람이 존재하냐는 것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성격이 다 다르고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 마찰과 갈등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 정말 나에게 진하게 공감해 줄 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떠오르지 않아 서글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평생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인간관계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서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문제를 나로 돌리고 나를 비난하면 타인과 좋은 관계를 갖기 어렵습니다. 나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비난하는 만큼 타인에 대해서도 불만과 분노가 쌓이기 때문이죠. 인간관계란 원래 그렇게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관계가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고 중요합니다. 기대를 하고 만났다가 실망을 느꼈다고 해서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고의 친구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까지 가까워질 수 있는 친구를 얻은 것이니까요. 더 가까워지기에는 한계가 있는 친구와 억지로 맞춰보려고 노력하면 그나마 좋은 관계도 망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정말 잘 맞는 친구가 당장 없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친구를 찾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중요한 가치이고 목적인지도 모르니까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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