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확 바뀌는 지폐] 문제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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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국은행은 내년부터 신권이 발행되더라도 경제적 충격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폐의 액면 가치는 물론 도안 인물까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중에 유통 중인 지폐는 모두 31억장에 달해 신권을 모두 발행한 뒤 실제 유통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화폐의 액면이 작기 때문에 모든 지폐를 만드는 데는 2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현재 조폐공사의 능력을 100% 가동하면 한 달에 만들 수 있는 돈은 약 1억장에 불과하다. 이는 1만원권 약 20억장, 1000원권 약 10억장, 5000원권 약 1억8000만장에 달한다. 외국에서는 고액권이 있기 때문에 신권으로 바꾸더라도 몇 달만 작업하면 전면 교체할 수 있다.

이처럼 제조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국민은 내년 초 5000원짜리 신권이 발행되더라도 희소성 때문에 사용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신권과 구권이 공존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질이 좋은 신권은 모아두고, 구권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신권을 아무리 많이 발행해도 돌지 않고 구권만 계속 돌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권이 나오는 시점으로부터 1년 안에 구권의 대부분을 회수한다는 한은의 목표는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도 상당기간 혼란과 불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 거래 건수의 70% 이상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CD)로 이뤄져 은행에선 모든 자동화 기기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은행권이 기존의 자동화 기기를 교체하는 데 모두 22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이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이번 도안 변경에도 불구하고 고액권 발행과 액면 단위 변경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문제다. 신권이 발행되더라도 돈의 가치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1만원으로는 미국 돈 10달러도 바꾸지 못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신권 발행 이후에도 고액권 발행이나 액면단위 변경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면서 화폐 개혁에 대한 논란은 쉽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김동호.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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