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생각지도

참 힘들게들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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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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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한 기자가 특종을 하면 같은 출입처의 다른 기자들은 죽을 맛이 된다. 데스크한테 깨지는 것도 그렇지만 구겨진 자존심에 참기 어려운 정신적 공황을 겪는다. 좀 더 파헤쳐 새로운 ‘팩트’로 반격을 가할 수 있으면 좋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건의 경우엔 만회할 기회조차 없다.

보스 한마디에 쫓겨나는 유승민 보고도
베껴야 했던 민경욱 심정이 어땠을까

 이때 더 힘든 건 다음날 경쟁지의 기사를 베껴야 한다는 거다. 나를 물 먹인 기자가 기사까지 잘 썼을 경우는 최악이다. 취재가 튼튼하고 정리가 잘 된 기사를 더 잘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저 베끼는 수밖엔 없다.

 청와대 대변인을 하다 인천의 분구 예정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전직 방송앵커 민경욱의 심정이 그랬을 거 같다. 며칠 전 지역구민들에게 거창한 출사표를 올렸는데 그만 표절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문과 사퇴 기자회견문을 베꼈다는 거다. 생뚱맞기 이를 데 없지만 얼핏 봐도 사뭇 유사한 부분이 많다.

 “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를 매일 자문했다는 대목은 그렇다 치자. 왜 정치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에 신음하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도전을 하고 싶다”는 대답은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다”는 유승민의 대답과 많이 가깝다.

 다음 문단은 더하다. 민경욱은 “제가 꿈꾸는 건강한 삶이란,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면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세상입니다”라고 썼다. 유승민의 연설문은 이렇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유승민의 ‘보수’가 민경욱 버전에서는 ‘건강한 삶’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거참, 이상한 일이다. 청와대에서 울려 퍼진 자기 보스의 고함 한마디에 쫓겨나던 유승민의 모습을 잊었을 리 만무한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의 글을 베끼다니 말이다. 결국 민경욱이 꿈꾸는 목표 역시 유승민과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멋져 보인들 무조건 옮겨 적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물 먹은 기사를 베끼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 짐작이 간다. 뒤에 쓰는 기사는 작은 것 하나라도 더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유승민이 꿈꾸는 ‘새로운 보수’가 ‘당연히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더해진 것이다.

 얘기가 갈수록 요상하게 흐른다. 같은 글을 옮겨 적고 심지어 한 술 더 뜨기까지 하는데, 유승민은 ‘배신의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고 민경욱은 대통령이 지역구에서 열리는 행사장에 부를(또는 불렀다고 주장할) 정도로 ‘진실한 사람’이 됐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오호라, 진실이란 게 목표와 상관없었던 거였구나. 방법에 있었던 거였다. 어쩌면 대통령이 꿈꾸는 세상도 유승민의, 그리고 민경욱이 따라 꿈꾸는 세상과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목표에 이르는 길과 보폭은 차이가 있다. 대통령의 길을 따라 보폭에 맞춰 따라가는 게 진실한 거였다. 그래서 얼마나 가까이 잘 따라가느냐에 따라 그들끼리의 ‘카스트’가 형성되기도 했던 거였다. 내 생각은 다르더라도 “이 길이 아니다” 토를 다는 건 “들어갈 때 마음과 나갈 때 마음이 한결같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었단 말이다.

 거짓되게 살아야 오히려 진실하게 되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참 힘들게들 산다. 잘나가고 출세하려는 이유가 이른바 ‘간지’ 나게 살기 위해서일 텐데, 잘나가고 출세하려고 영 모양 빠지게 살고들 있으니 말이다. 이런 세상 살면서 간지를 지키는 현명한 지혜가 있다. “거짓이 세상에 있게 놔두자. 심지어 거짓이 승리하는 것도 내버려 두자. 그러나 나를 통해서 그렇게 되도록 하지는 말자.” 솔제니친의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