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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리 인상보다 유동성 공급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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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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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규
미즈호 은행 자금실 이사

미국이 ‘제로 금리’ 시대를 끝냈다. 내년 말까지 1% 포인트 이상의 추가 금리인상도 예상된다. 인상 이전에도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만일 금리를 올린다면 그건 미국 경제가 잘 회복하고 있음을 증명(testament)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국제 금융계 일각에서는 벌써 ‘미국의 금리 정상화 선언이 조금 이르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줄곧 밑도는 상황에서 고용지표 호전만을 이유로 금리를 올리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미국의 금리인상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몇 가지 고려할 것들이 있다.

 먼저 금리인상보다는 적극적으로 유동성 공급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보다는 일본·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통화 긴축보다는 완화를 통해 수출 등에서 가격 경쟁력을 살리는 게 절실하다. 특히 지금 같은 경기 불황에서 돈이 풀려도 부동산보다는 기업들의 생산자금이나 가계의 생계형 대출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유동성 공급의 악영향보다 순기능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는 가계의 ‘서브 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문제가 컸음에도 적극적 양적 완화를 실시했다. 가계 부채 문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유동성 공급을 막는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아직 금리인하 카드를 쓸 시간이 남아 있고,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아직도 한국 기준금리는 연 1.5%로 미국이 내년 말까지 1% 포인트를 인상해도 금리 수준이 같아질 때까지 여유가 있다. 특히 대부분 투자은행들의 글로벌 펀드는 아직도 한국을 ‘신흥 시장’으로 간주하고 있고, 또한 주식 투자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급격한 유출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금리 인하로 국내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킨 다음 인상을 생각해도 될 기간이 아직 일 년 정도는 더 있다.

 특히 환율은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다. 지금같은 경기 침체를 이겨낼 체력을 비축하려면 수출 경쟁력을 다져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앞으로 예상되는 달러 강세 시대에서 우리나라 주요 경쟁국인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의 가치 하락 가능성에 대해 한국 원화 가치의 상대적 평가절하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경제도 금융도 사람과 같은 유기체다. 사람은 뛰어다니다 아파서 누우면 약을 먹고 회복한 뒤에서야 다시 일어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기초 체력을 ‘회복’한 뒤에야 금리인상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변정규 미즈호 은행 자금실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