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죽느냐, 사느냐 차단된 백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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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16강전 1국>
○·김지석 9단 ●·스 웨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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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보(85~93)=86은 억류된 △를 최대한 활용해 흑의 영토를 깎아내겠다는 의도인데 게걸음을 치듯 옆으로 늘어둔 87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호착.

 보통은 ‘참고도’ 흑1로 젖히는 수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선 백2~6 같은 끈적끈적한 수단이 있어 성가시다.

 87의 의도는 백이 물러서면 그때 젖혀 막겠다는 뜻이고 이 정도 경계에서 지킬 수만 있다면 흑의 승리는 확정이라는 계산이다. 88은 목숨을 건 도박. 흑의 주문대로 물러섰다가는 실리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져 따라잡을 수 없으니 ‘차단하면 안에서 살 수도 있다’고 은근하게 협박하는 것이다.

 안경테를 고쳐 잡은 스웨가 바둑판으로 바짝 다가선다. 집중과 몰입이 필요한 장면. 제한시간도 김지석보다 여유가 있어 산책하듯 천천히 수읽기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사실, 김지석이 상대적으로 더 호전적이라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스웨도 공격을 즐기는 적극적 기풍이다. 추이를 읽고 검증을 마친 듯 89로 끼운 뒤 93까지 단호하게 끊어간다. 죽느냐, 사느냐. 철통같은 흑의 진영에 갇힌 백 일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대로 잡히면 승부도 끝인데 ‘흑은 백 일단을 살려주더라도 약간의 대가만 얻어내면 나쁘지 않다’는 게 검토실의 중론.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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