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토스 2000개 노재욱, 현대 자존심 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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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프로배구 KB손해보험에서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세터 노재욱(23)은 최태웅(39) 감독의 집중 지도를 받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명세터 출신인 최태웅 감독은 국가대표 출신 세터 권영민(35)을 내주고 신예 노재욱을 데려왔다. 1m91㎝의 큰 키를 가진 노재욱이 '스피드 배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는 하루에 2000개씩 토스 훈련을 시켰다. '스피드 배구'는 지난 시즌 5위에 그쳤던 현대캐피탈이 올시즌 팀재건을 위해 내건 야심찬 전략이다.

노재욱은 대학 때까지만 해도 무명 선수였다. 광주전자공고 1학년 때 그의 키는 1m78㎝에 그쳤다. 노재욱은 "키가 작아서 프로 선수가 되거나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고2 때부터 키가 쑥쑥 자랐다. 노재욱은 운좋게도 배구 명문 성균관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2년 선배인 세터 곽명우(1m93㎝·OK저축은행)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4학년이 돼서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고, 지난해 LIG손보(KB손보의 전신)에 입단했다.

노재욱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 4월이었다. 현대캐피탈과 KB손보가 노재욱·정영호(24·레프트)-권영민의 2대1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다. 최 감독은 "재욱이가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키가 큰 세터가 내가 원하는 배구에 적합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노재욱은 "강성형 KB손보 감독님으로부터 트레이드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터 출신 감독님께 배우는 것도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의 '스피드 배구'는 '업템포 1.0'이라는 전략으로 집약된다. 리시브와 세트, 공격까지의 과정을 1초 안에 끝내는 빠른 배구다. 공을 연결하는 세터 노재욱이 키플레이어다. 최 감독은 훈련 시간 중 3분의1을 노재욱을 지도하는데 할애했다. 노재욱은 "감독님이 플레이 하나하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노재욱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따라왔다" 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올시즌도 중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됐다. 대학 팀과의 평가전에서 지기도 했다. '스피드 배구'는 조직력이 가장 중요한데 초보 감독과 초짜 세터가 해내기엔 무리라는 우려가 많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15일 현재 현대캐피탈은 10승6패(승점32)를 기록하며 OK저축은행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노재욱이 허리·발목 부상으로 빠진 2라운드에서는 3승3패에 그쳤지만 그가 돌아온 뒤 3승1패를 거뒀다.

'업템포 1.0'의 또 다른 무기는 '비디오'다. 최 감독은 중학교 졸업 선물로 아버지로부터 비디오 카메라를 받았다. 그 이후 최 감독은 틈날 때 마다 자신의 플레이를 찍어 돌려봤다. 감독이 된 지금도 비디오 분석에 열심이다. 최 감독은 "처음에는 4위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고 말했다.

천안=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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