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네 글자, 1899년 독립신문 논설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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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황태연 교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처음 사용했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자주독립을 위해 결성된 상해 임시정부가 1912년 선포된 중화민국의 이름을 모방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쟁점 중 하나는 1948년 8월 15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각자의 역사 해석에 따라 종전처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로 봐야 한다는 입장과 나라가 처음 세워진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 부딪쳤다.

통설 뒤집는 논문 쓴 황태연 교수
‘대한민국 대계를 위하야’구절
1919년 임시정부서 첫 사용 아니다
‘민국’은 영·정조 시대부터 쓰여
건국도 대한제국 선포 때로 봐야

 그런 대결 구도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할 만한 새로운 역사적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가 실은 그보다 최대 20년 전인 1899년에 ‘독립신문’ 등 당시 일간지, 각종 기념식 축사에서 하나의 비공식 국호로 ‘일정한’ 대중성을 갖고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황태연(60)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제기했다. 황 교수는 그런 주장을 담은 논문 ‘‘대한민국’ 국호의 기원과 의미’를 지난 6월 한국정치사상학회에서 발표했고, 관련 학술지에도 50여 쪽 분량으로 게재한 데 이어, 내년에 보다 쉽게 풀어쓴 단행본을 출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호의 탄생에 관한 학계의 통설은 1912년 중화민국 선포에 영향을 받아 그 이름에서 ‘민국’을 빌려와 대한제국의 ‘대한’과 합쳐 지었다는 것이었다. 미국식 민주주의 세례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 등이 민주주의의 의미를 담아 1948년 대한민국을 국호로 삼았다는 학설도 있다. 두 학설 모두 1919년 이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8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황 교수는 “1897년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의 공식 국호가 대한제국 또는 대한국이었던 점, 그와는 별개로 조선 후기의 탕평군주였던 영·정조 때부터 ‘민국(民國)’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였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자연발생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찾아보니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가 찾아낸 1919년 이전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사용된 사례는 모두 일곱 건이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독립신문 1899년 4월 4일자에 실린 논설 ‘대한젼졍(大韓錢政)’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해 동전을 과도하게 찍어낸 결과 대한제국 재정에 부담을 주게 됐음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다. ‘이럿케 된 것은 대한민국 대계를 위하야 대단 애셕히 녁이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대한민국 국호는 심지어 1903년 주한 일본공사관이 본국 외무성에 보낸 ‘한국조정(朝廷)의 태환권 발행 계획’에 관한 보고문에도 등장한다. 일본 외교관들이 공식 보고서에 사용할 만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일정하게 사용됐다는 얘기다.

 황 교수의 논문은 단순히 대한제국 국호가 1919년 이전에도 사용됐음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승정원일기? ?고종실록? 등 방대한 분량의 역사 연구결과와 자신의 독일 유학(프랑크푸르트 대학) 주전공인 정치철학 지식을 동원해 대한민국 국호의 기원이 영·정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핵심은 대한민국의 ‘대한’ 부분은 특별한 논쟁거리가 없지만 ‘민국’은 단순히 나라 이름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백성을 군주보다 중히 여겨야 한다는 공자·맹자의 정치철학을 실제로 나라를 이끄는 통치철학으로 받아들인 조선 왕조가 17∼18세기 백성들의 공무 담임·정치 참여가 확대되는 과정을 겪은 후 고종 대에 이르러 신분차별 철폐를 선언한 일종의 ‘국민국가’에 이르게 됐는데, ‘민국’이라는 이름은 그런 정치적 변동과정을 함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황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면 1945년 8월이 정부수립이 맞냐, 건국이 맞냐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5000년 전부터 정치 체제만 바뀌어 왔을 뿐 오랜 세월 동안 국민국가가 형성된 나라에서 언제 나라가 생겼는지 따질 게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굳이 따져야 한다면 1897년 대한제국 선포를 건국 시점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가 이런 논의를 펴는 바탕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학 경전 ?서경?의 ‘민유방본(民惟邦本)’ 철학, ‘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는 맹자의 ‘민귀군경론(民貴君輕論)’ 등 공·맹 정치철학이다. 공자 사상이 서양의 어떤 정치철학보다도 뛰어난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황태연=1955년 전북 김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3학년 때 외무고시에 합격했으나 학문의 길을 선택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마르크스 연구로 박사학위. 현재는 정서적인 행위인 공감 능력을 끌어들인 ‘공감의 해석학’이라는 틀로, 동아시아의 공자·맹자 사상이 17∼18세기 서양 계몽 사상의 뿌리임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DJP’ 연합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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