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단카이 세대 날려 버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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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를 매듭짓는 최후의 카드로서 정부가 만든 주식회사, 산업재생기구가 문을 열었다. 채권을 매입해 매각 가능한 것을 기업에 팔아 부실채권 처리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한 자금으로 10조엔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재생기구는 앞으로 5년 후에 문을 닫는다. 단기간의 결전인 셈이다.

*** 30~40대 초반 일본의 엘리트

여기에는 약 80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있다. 변호사.공인회계사.경영 컨설턴트.증권 애널리스트.펀드 매니저 등이다. 이들은 거의가 30대부터 40대 초반까지다.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도야마 가즈히코(富山和彦)전무는 43세다. 변호사지만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학위(MBA)를 취득해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근무한 뒤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도야마는 이 조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집단 속으로 개인을 매몰시키지 않도록 한다. 일본적인 프로페셔널 집단, 좋은 의미로 엘리트를 지향한다." "앞으로 일본은 건전한 엘리트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전후 평등주의가 팽배하는 바람에 일본은 엘리트를 잃고 말았다." 도야마는 일본에서 30~40대 초반의 '신인류(新人類)'로 불리는 층에서 엘리트가 태어날 것으로 본다.

확실히 산업재생기구에는 각계의 선두주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마쓰오카 마사히로(松岡眞宏)도 그중 한명이다. 35세다. 그는 말한다. "외국계 증권회사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일본인이 외국인에게 바보로 취급당하는 것을 몇번이나 보았다. 일본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마쓰오카의 앞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 '단카이(團塊) 세대'(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이비 붐 시기에 태어난 세대)다.

"부실채권 처리를 가속화하고, 일본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단카이 세대를 날려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쓰오카는 얘기한다. 일본 기업에서 관리직의 중추를 맡고 있는 단카이 세대를 날려 버리고 지도부를 젊은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1946년부터 50년까지 1천만명 이상이 태어났다. 불과 5년 동안 총인구의 10%가 탄생한 것이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그들은 관리 사회에 대한 항의 운동을 했다. 부모에게 대들고 대학을 점거했으며 교사를 규탄했다. 라이벌 집단과는 무장 투쟁을 벌였고 미디어를 이용해 대중에게 호소했다.

그런 그들이 지금 관료 조직과 기업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들의 암울한 미래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다. 94년엔 '단카이 세대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책이 출판됐다.

일본 경제의 암이 된 금융기관의 경영 관리직은 바로 단카이 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산업재생기구의 처리 계획에 틀림없이 저항할 것이다. 은행을, 일본을 단카이 세대에게 맡겨선 안 된다. 그들을 날려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마쓰오카의 '단카이 날려 버리기'론이다. "그들은 전전(戰前)과 다른 교육을 받은 최초의 세대다. 그들은 미국에 대해 말로는 '괘씸하다' '패권 반대'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미국에 동화돼 미국의 세계관, 그중에서도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발전관을 받아들였다. 열등감의 발로다."

*** 산업재생기구가 성공하려면

산업재생기구 성공의 관건은 은행에 채권 처리를 정말로 촉구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다. 이제 큰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신인류 세대와 단카이 세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는 긴축 재정과 고령화와 더불어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일본의 세대 간 대립과 항쟁의 일단일 뿐이다. 도야마는 "현재의 일본에는 전후 총결산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국심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그들은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마쓰오카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의 움직임에 위화감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일본의 신인류 세대는 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일본의 회생을 향한 가장 과감한 도전자로 등장하고 있다. 건전한 엘리트들은 건전한 민족주의자이기도 한 것 같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대기자
정리=오영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