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죽음 내리는 패도, 굴복시키는 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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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32강전 B조>
○·펑리야오 4단 ●·나 현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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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보(101~113)= 1로 우상귀 쪽 본진과 연결해야 할 때 맞끊어간 2가 형태정비의 맥점. 계속해서 3~9로 최대한 압박하지만 잡으려는 뜻은 없다.

 수순 중 3으로 치받았을 때 ‘참고도’ 백1로 몰고 나가는 수단은 안 된다. 백5 때 흑6으로 뒤에서 몰아 차단하는 수가 있어 백 대마가 위험하다.

 흑으로서는 백 대마의 삶을 위협하면서 약간의 대가를 받아내기만 하면 되는데 실리가 조금 더 붙었고 중앙이 두터워졌다. 10, 12로 살아야 할 때 선수를 취해 하변 13으로 전개했으니 만족이다.

 가차 없이 죽음을 내리는 패도(覇道)가 아니라 살려주되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왕도(王道). 80~90년대 서점가를 휩쓴 중국 무협소설의 대가 와룡생의 ‘천검절도(天劍絶刀)’를 보면 꼭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은밀한 집단이 ‘가차 없이 죽음을 내리는 패도(覇刀)’와 ‘살려주되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왕검(王劍)’을 상대하는 상극의 진법을 만들어 무림제패를 꿈꾸는데 한 청년이 ‘왕검’과 ‘패도’의 공동전인이 되어 무림에 나선다는 반전으로부터 나온다.

 통쾌하지 않은가. 고심 끝에 각각의 상극을 만들어냈는데 둘을 동시에 갖춘 고수가 나타나 의표를 찌르다니.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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