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베트남전은 대한민국 전시 해당 안 돼 … 참전용사에게 전투수당 못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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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0월 9일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는 베트남 동남부 깜라인 해변에 상륙했다. 첫 번째 전투병 파병이었다. 이후 베트남에는 73년 완전 철수 시까지 32만여 명이 파병됐다. 그중 5099명이 숨졌고 1만1232명이 부상을 당했다. 장병들이 참전 대가로 받은 건 월 40~50달러 안팎의 해외근무수당이 전부였다. 미군의 20% 수준이었다. 그 돈의 80% 이상은 국내로 송금됐다.

법원, 국가 상대 청구소송 기각
재판부 “당시 파병은 군사 원조”

 김우일(72)씨 등 베트남전 참전용사 30명은 2012년 2월 국가를 상대로 “당시 주지 않은 전투근무수당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면서 “해외근무수당이 미군에 비해 턱없이 적었으니 미지급분도 달라”고 함께 청구했다.

 이들이 전투근무수당 청구의 근거로 삼은 건 당시 군인보수법 제17조였다. 이 법엔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 때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게 전투근무수당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원고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전투에 참가했다면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 측은 “베트남전쟁은 대한민국의 전시 또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조한창)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전시’란 대한민국의 전시만을 의미한다”며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는 전쟁’ 또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전쟁’으로 확대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베트남전 파병은 군사 원조”라며 “이 전쟁으로 대한민국이 전시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전투근무수당 지급청구권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해외근무수당 미지급분에 대한 청구권도 부인됐다. 재판부는 “군인의 보수는 소속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다른 나라 군인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았다고 그 차액을 청구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청구권이 인정되더라도 권리 발생 시점부터 5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덧붙였다. “2005년 8월 브라운 각서 등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된 이후에야 권리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후 정부가 문제 해결을 약속해 소송이 늦어졌다”는 김씨 등의 주장을 배척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다온의 이면재 변호사는 “법원이 지나치게 청구권의 근거를 좁게 해석했다”며 “국익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군인들에 대한 보상 필요성이 외면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월남전 참전군인들에게 전투근무수당에 준하는 보상을 해 주는 내용의 특별법안이 계류 중이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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